경영책임자를 ‘대표이사 또는 안전보건이사’로 수정… 법 피하기 꼼수로 전락 우려

 백혜련 법제사법위원회 법안심사제1소위원회 위원장(더불어민주당 왼쪽)이 7일 국회에서 열린 법안심사 1소위원회의실로 향하는 동안 정의당 강은미 원내대표 등 의원들이
 백혜련 법제사법위원회 법안심사제1소위원회 위원장(더불어민주당 왼쪽)이 7일 국회에서 열린 법안심사 1소위원회의실로 향하는 동안 정의당 강은미 원내대표 등 의원들이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대로 제정하라"라는 구호를 외치고 있다 / 사진 = 연합뉴스.

국회에서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이 추진되고 있는 가운데 이 법의 핵심 조항인 처벌 대상이 되는 경영책임자에 대한 정의가 당초 ‘대표이사 및 안전보건이사’에서 ‘대표이사 또는 안전보건이사’로 변경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대해 안전관계자들은 힘없는 안전전문가만 범죄자로 만드는 법이라고 강하게 반발하고 나서는 모습이다.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소위원회는 최근 중대재해기업처벌법과 관련돼 논란이 되고 있는 조문들을 검토하고 합의안을 마련중에 있다.

특히 6일에는 논란이 되고 있는 경영책임자 정의에 대해 당초 박주민 민주당 의원안과 정부안에서 후퇴해 여야 합의에 따라 '사업을 대표하고 사업을 총괄하는 권한과 책임이 있는 사람(대표이사) 또는 이에 준하여 안전보건에 관한 업무를 담당하는 사람(안전보건 담당 이사)'으로 수정한 것으로 전해졌다.

소위를 끝내고 기자들은 만난 백혜련 의원은 경영책임자 조항을 ‘또는’으로 정리한 것에 대해 “‘또는’으로 하더라도 실제 경영책임자의 책임을 면하지 않는다는데 공감했다”며 “‘및’으로 할 경우 두 사람 모두 처벌받게 된다는 지적이 있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같은 의견에 대해 안전관계자들은 크게 반발하고 있는 모습이다.

익명을 요구한 한 관계자는 “실제 기업의 안전관리는 최고경영자의 의지를 통해 이뤄지는데 이같은 조항은 경영자 대신 힘없는 안전보건 담당 이사에게 책임을 떠넘기는 꼴”이라고 지적했다.

또 다른 관계자도 “애꿎은 안전전문가만 범죄자로 만드는 법”이라며 “기업의 생리상 최고경영자는 안전전문가를 방패막이 삼아 자신들의 처벌을 회피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우려 섞은 지적은 계속 이어졌다.

건설사 한 관계자는 “안전담당 부서장을 일명 바지 사장처럼 안전 임원으로 승진시켜 중대사고가 발생하면 책임지게 할 수도 있다”며 “매년 수건의 사망사고가 발생하고 있는 건설사의 경우 충분히 예상될 수 있는 일”이라고 꼬집었다.

청와대 청원 내용.
청와대 청원 내용.

이와 관련해 청와대 청원게시판에는 중대재해법이 당초 취지와는 다르게 안전전문가들의 활동 위축 뿐아니라 신변을 위협하는 법으로 변질되고 있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5일 게시된 “아무도 안전관리자가 되려하지 않을 것입니다”라는 제목의 청원에서는 안전업무 자체가 위축될 우려가 있음을 지적했다.

청원인은 “경영진이 해당 조항을 악용해 책임을 전가하는 수단이 될 것”이라며 “이러한 문제가 있는데 누가 사명감을 가지고 안전업무를 하려고 하겠느냐”고 주장했다.

한편 안전보건과 관련된 47개 단체가 가입돼 있는 한국보건안전단체총연합회도 7일 성명서를 내고 “처벌 대상에 경영책임자에 대한 규정을 명확히 해 대표이사가 아닌 안전담당이사나 하급자 및 하도급 관계자에게 책임을 돌릴 수 있도록 해서는 안된다”고 지적했다.

정혜선 한보총 회장은 “일하다 사망하는 근로자가 더 이상 발생하지 않도록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이 당초의 취지에 맞게 제대로 제정돼 실질적으로 산업재해를 예방하는데 기여할 수 있는 법이 되기를 바란다”며 “더 이상 법의 목적이 훼손되지 않고 근로자의 건강과 생명을 보호할 수 있는 실질적인 법으로 제정될 수 있기를 기원한다”고 주장했다.

시민단체에서도 비판은 제기됐다. 

정재희 안전생활실천시민연합 대표는 8일 국회 앞에서 열린 기자회견을 통해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이 누더기를 넘어 쓰레기가 됐다고 주장했다.

정 대표는 “5인 미만 사업장 노동자는 죽어도 된다는 법, 책임 있는 대표이사가 ‘바지이사’에게 책임을 떠넘길 수 있는 법, 징벌적 벌금과 손해배상이 없는 법, 공무원 처벌도 없는 법은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이 아니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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