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는 일상생활에 필요한 에너지를 소리도 냄새도 없이 공급해 주는 청정동력이다. 가정집의 조명, 냉장고, 컴퓨터 뿐만 아니라 농업, 어업, 의료, 국방에 이르기까지 전기는 인간에게 공기와 물 다음으로 고마운 것이다. 그러나 전기는 야누스의 얼굴을 가지고 있다. 사람들이 전기를 안전하게 취급할 때에는 그렇게도 고맙지만 자칫 잘못 취급할 경우에는 순간적으로 사람의 생명을 앗아가기도 한다. 2002년 한해 동안에 우리나라에서는 전기화재 및 감전사고로 173명이 목숨을 잃었고 1129명이 부상을 당했으며 재산피해액만도 549억원에 이른다고 한다. 이러한 전기재해를 예방하기 위한 중요 수단으로서 정부에서는 전기설비 기술기준을 정해 전기설비의 설계·시공·유지·운용에 적용토록 하고 있다. 그런데 이 기술기준에 사각지대(규정해야 할 분야를 미규정하고 있는 것)가 있거나 전기재해 예방에 효과적으로 부합되지 못하는 부분이 있다면 어떻게 될까? 이는 사고를 방치하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다. 우리나라의 전기설비 기술기준은 일본의 것을 모방해 1974년 제정 후 지금까지 20여회 개정, 사용하고 있으나 그 골격은 지난 30년동안 큰 변화없이 유지해 오고 있다. 그렇다면 현행의 기술기준이 전기재해를 효과적으로 예방할 수 있는 좋은 기준인지 한번쯤 눈을 크게 뜨고 짚어볼 필요가 있다. 기술기준의 주요내용 중 감전사고와 관련이 있는 접지시스템에 관한 규정을 예를 들어 살펴보겠다. 전동기에 누전이 돼 찌릿찌릿할 경우 전동기 외함에 충전된 대지전압이 높으면 높을수록 감전사고의 위험은 커진다. 접지시스템에 관한 기술기준의 내용상 미국·유럽에서는 전동기 외함의 대지전압이 50V를 넘지 못하도록 규정하고 있는데 우리나라의 규정에 따르면 100V를 넘게 되는 경우도 있다. 따라서 누전된 전동기의 외함을 사람이 만지게 될 경우 감전사고의 위험도가 미국·유럽보다 우리나라가 더 높은 것이다. 그렇다면 관련 조항을 찾아서 개정해 버리면 될 것 아니냐고 반문할지 모르나 그게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 또 다른 문제점을 유발할 수 있기 때문이다. 결국 기술기준을 종합 검토해 광범위한 대책을 강구해야 한다. 우리나라의 현실에 부합되는 전기재해 효과적 예방기준을 찾아내기 위해 몇년이 걸리더라도 지난 30년동안 실행하지 못했던 종합검토를 지금이라도 가급적 빨리 착수하는 것이 좋겠다. 매년 대구지하철 화재사고보다 더 큰 규모의 인명피해가 전기로 인해 발생하고 있는 것을 더이상 방치해서는 안되겠다. 우리나라도 이제는 세계 12번째 교역국이고 국민소득 1만불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만큼 그동안의 안전경시 풍조를 과감히 바꿔 앞으로는 안전문제에 체계적으로 접근하는 것이 선진국으로 가는 안전의 지름길임을 강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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