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여년전 사회인으로서 첫 발을 디딘 회사에서 섬유직물수출을 담당할 때다.  당시 회사는 수익기반이 취약해 이의 타개책으로 전산화(정보시스템)분야에 투자를 하고 있었다. 영업ㆍ생산ㆍ관리 3개 부문이 서로 자신의 성과로 회사가 유지된다고 주장할 때였다. 그런데 영업을 담당하고 있던 필자가 수출부서의 업무전산화 추진팀에 포함됐다. “전산화는 전산담당부서의 일이지 내가 왜?” 전산화 추진팀 첫날 회의 때 책임자 격인 전산부서의 담당 대리가 “당신이 하고 있는 일의 모든 내용과 절차, 그리고 애로사항을 이야기해 보라”고 했다.  “그 복잡하고 까다로운 수출업무를 과연 구두설명만 듣고 이해할 수 있을까?”  아마추어의 장황한 설명을 묵묵히 들으면서 P대리는 메모를 하고 질문을 했다. 그런 이후 P대리는 밤을 새 가면서 수출업무내용을 혼자 표준화해 보고 이를 프로그램 차트로 착착 변환시켜 나갔던 것 같다. 더욱 놀라운 것은 영업의 베테랑들도 소화해 내기 힘든 그 많은 예외사항, 특별업무들까지 모두 프로그램에 반영하고 있었다는 점이다. 그는 프로수준의 S.A(System Analyst)였다. 시스템이 정상가동되면서 먹지를 5장이나 겹쳐 타자기로 치던 수출계약서를 컴퓨터 화면에 키보드로 입력하게 되었다. 영업부서와 바이어와의 계약내용은 회사 전직원에게 공개되고 공장에서는 자체 생산 스케줄을 짤 수 있게 됐으며 관리부서는 개인적 영업실적까지 실시간으로 집계 및 평가하는 등 전사적 자원을 효율적으로 운영하게 됐다. 요즘 생각하면 뭐 그리 대단한 일이냐고 반문할지 모르지만 여기서 거론하고자 하는 점은 바로 P대리의 전문가로서의 분석 및 문제해결능력이다. 기업의 안전업무를 경험해 오면서 나름대로 안전관리는 전문성이 일반성에 우선하는 특화업무란 점을 알게 되었는데 이는 안전전문가들을 간혹 위기에 빠뜨리게 한다. 만약 기업의 분위기가 “안전은 안전부서에서 알아서 하는 것 아닌가?” 라는 식의 ‘위임형’이라면 그나마 다행이다. 왜냐하면 바꾸어 보면 그만큼 안전전문가로서의 전문성을 인정한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오히려 더욱 걱정인 것은 “전문가가 이런 문제점도 해결 못하나?”하는 ‘포기형’ 분위기로의 전락이다. 이 경우는 결과적으로 안전전문가로서의 전문성조차 인정받지 못하게 됐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왜 그럴까?  이제 2004년 새해가 시작됐다. 안전전문가들이 원론적 업무목표를 무재해로 설정하고 현장을 열심히 뛰어도 안타깝지만 현실적으로는 산업재해가 발생하고 있다. 이 문제점을 정확히 분석해서 해결해 낼 수 있는 사람은 안전전문가 뿐이며 이것이 안전전문가의 책임이다.  더도 덜도 없이 전문가의 자존심을 건드려서라도 산업재해를 막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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