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스의 위해로부터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지키기 위해 가스안전관리를 하고 있는 한국가스안전공사가 올해로 창립30주년을 맞이했다. 공사는 지난 78년 '고압가스보안협회'로 출범해 지난 30년간 수많은 가스사고 등을 겪으면서 우리나라 가스안전의 최고 기관으로 자리잡았다. 세계제일의 가스안전전문서비스 기관으로의 도약을 준비하고 있는 한국가스안전공사의 지난 30년간의 역사를 돌아본다.(편집자)안전의식·가스상식 불모지에서 1974년 고압가스보안협회로 창립 한국가스안전공사는 지난 74년 성장 위주의 경제정책 기조속에서 안전의식 부족과 가스상식부족에 의한 일련의 대형사고를 겪으면서 체계적인 안전관리를 위해 1974년 고압가스보안협회로 출범해 지난 30년간 국가 가스안전관리를 전담해 왔다. 출범당시 본사와 전국3개 지부, 4개 지소로 약100여명의 인원으로 출범했던 공사는 현재 경기도 시흥 소재 본사를 정점으로 전국 13개 지역본부와 14개 지사 조직망을 갖추고 1185명 전 직원의 90%가 가스기술사, 가스기사 등 국가기술자격증을 갖춘 전문인력을 가지고 가스시설의 검사, 점검, 안전진단, 사고조사, 가스안전기기 연구개발, 대국민 가스안전홍보를 통해 가스안전관리업무를 수행하고 있다   공사는 우리나라 경제성장의 역사와 함께 불모지에 가까웠던 우리나라 가스안전문화의 장을 개척해 왔다. 그러나 급격한 경제성장의 과정에서 가스에 대한 이해부족, 안전의식 부족으로 인해 71년 대연각호텔 가스폭발사고(사상자 232명), 72년 대왕음식점 가스화재(사상자 113명) 등 일련의 대형사고가 발생하였으며 이를 계기로 체계적인 가스안전관리를 위해 1974년 현 공사의 전신인 "고압가스보안협회"가 출범했다 순수 민간기구로 출범한 고압가스보안협회는 설립당시 본사는 물론 지방지부도 자체검사시설을 갖추지 못한 상태로 민간 용기검사시설을 무상으로 빌리거나 기본장비만으로 검사업무를 담당했으나 1975년 2월 중앙검사소를 독립시키면서 인력과 장비를 보강했고 점차 전문검사기관으로서의 면모를 갖춰나가기 시작했다. 하지만 가스사용량이 10년 동안 무려 30배이상 증가하면서 고압가스보안협회의 관리, 규제 대상도 자연 증가하게 됐고 결국 협회의 조직과 운영의 쇄신도 불가피해졌다. 1978년 2월, 1970년대 두 차례에 걸친 석유파동의 여파로 1978년 신설된 동력자원부는 가스 사용량의 급증에 따라 고압가스안전관리법을 전면 개정하는 한편 관련 사업을 지원하기 위한 가스사업법을 새로 제정했다. 당시 개정된 고압가스안전관리법에 따라 정부는 필요한 재원을 지원 받을 수 있는 공기업의 형태로 고압가스보안협회를 전면 개편, 공사로 새롭게 출범한 한국가스안전공사는 정관을 개정, 민간협회 형식의 회원제와 회장제를 폐지하는 대신 이사장제를 두고 동력자원부장관이 임면권을 갖도록 했다. 또 기존업무 이외에 가스안전관리자와 가스취급 책임자 양성교육과정을 추가 개설하고 1979년 12월 서울 대치동(현 서울지역본부)으로 사옥으로 이전했다. 당시 공사는 업무의 확대 증가로 조직이 더욱 세분화 특성화됐으며 직원의 정원도 131명으로 늘어나게 됐다. 또 80년에 들어서는 이사장의 기술자문을 위해 기술전문위원직을 신설하는 한편 공사내 시험실을 설치했으며 다시 정원을 215명으로 증원, 각종 규정을 제·개정하기 시작했다. 본격적인 가스의 대중화 바람이 불던 1980년대를 거치면서 공사는 다시 전면적으로 확대되 는 시기를 맞게된다. 각 시·도에 지부를 설치하게되며 조직의 전면적 확대개편 작업에 착수하게 된 것이다. 83년 말 고압가스안전관리법이 전면 개정되고 가스사업법은 도시가스사업법과 액화석유가스의 안전 및 사업관리법으로 개편된다. 가스관련 법규가 이때부터 3법 체제로 보완 개편된 것이다. 잇따른 조직의 확대에 따라 공사는 인력 수용을 위한 청사의 필요성을 인식, 87년 9월 현재 본사(경기도 시흥)에 새 사옥을 착공하게 됐으며 이듬해 12월 준공하게 된다. 이후 공사는 가스 3법을 다시 정비하고 검사업무와 시험장비를 현대화하는 한편 긴급출동반을 편성, 운영에 들어가게 된다. 또 정밀검사요원의 국내외 연수, 상담신고센터의 운영 등 가스사고 예방을 위한 활동영역도 꾸준히 넓혀간다. 94·95년 잇단 대형가스참사 계기 종합적 안전관리체제로 탈바꿈 공사는 1994년 12월 서울 아현동 가스폭발사고와 95년 4월 대구지하철 공사장 도시가스폭발사고를 계기로 또다시 새로운 전환기를 맞게된다. 잇따른 두 차례의 대형참사를 계기로 공사는 시설검사위주로 운영돼 오던 안전관리체계를 종합적인 관리체계로 전환하고 정기적 이행실태 평가제도를 전격 도입하게 되었다. 1995년 5월 AGSMS(가스안전관리체계개선 계획)를 추진하기 위해 가스안전기술연구센터를 신설하고 가스용품에 대한 품질인증제와 가스배관의 설계·시공감리제도를 도입했다. 도시가스 배관의 안전확보를 위해 정기적인 기밀시험도 강화했으며 대규모 공사장에 대해서는 가스안전 영향평가를 실시토록 하고 가스배관망의 전산화를 추진하는 등 발빠른 변화를 주도해 왔다. 또 전국민을 대상으로 한 계몽 홍보도 강화하기 시작했으며 초·중·고생을 대상으로 한 안전교육도 더욱 확대하게 된다. 당시 잇따른 2건의 대형도시가스 사고로 인해 도시가스사업법 시행규칙 등 관계법규가 정비, 보완됐으며 안전점검원 양성교육·정기교육 과정과 보수·유지관리원 특별교육과정 등이 신설됐다. 이처럼 사고대책의 일환으로 공사의 업무량이 폭증하게되자 사고이후 공사의 직원은 두 배 이상 급증하게 된다. 그러나 97년 외환위기를 맞으면서 공사도 한때 위기를 맞았다. 정부차원의 위기극복 노력으로 구조조정이라는 요구를 받게됐으며 이에 따라 공사도 초긴축 운영이 불가피하게 됐다. 긴축정책을 통해 비용을 줄이는데 경주했으며 비효율성을 개선하기 위한 경영진단, 직원정년단축 및 희망퇴직제를 실시함으로써 인력을 감축하고, 기구개편을 통해 1처실 3개 지역본부를 축소하여 전체인원을 1185명으로 감축, 위기를 극복해냈다. 외환위기속 국제적 위상 제고 온힘, 지난해 5월 가스안전교육원 개원 외환위기 속에서도 공사는 각종 인증기관 획득을 통한 국내외적으로 위상을 높이는데 노력을 경주했다. 97년 국가교정검사기관 인정을 시작으로 98년 전기방폭성능검정기관과 직업능력개발훈련기관에 지정됐으며 99년에는 ISO 9000인증기관에 지정되면서 본격적인 업무에 들어갔다 2000년 해외유명규격 인증지원기관과 KGS 18000 인증규격을 제정하는 한편 2001년 국가지정연구실 지정, ISO 14000인증기관을 지정 받았다. 2002년에는 가스용품 CE마킹시험기관과 국제공인시험기관 지정을 통해 인증 및 지원기관으로서 국내외 대외신인도를 높여가고 있다. 아현동 및 대구폭발사고를 계기로 96년 설립추진이 결정된 교육원을 2003년 5월 준공, 개원하고 종전 이론 중심의 가스안전교육을 체험 실습위주의 교육시스템으로 전격 전환했다. 2004년 30주년을 맞이한 공사는 세계적인 공인검사기관과의 교류나 인증기관으로서의 인정 등 기술 우위를 공고히 하기 위한 다양한 노력들을 전개하고 있다. 30년간 가스산업의 급격한 대중화 추세 속에 보다 편리하고 보다 안전한 가스의 사용 문화를 정착시키기 위해 가스사고란 음지를 묵묵히 지켜온 가스안전공사, 이제 세계 속의 신뢰받는 세계제일의 가스안전 서비스기업으로의 새롭게 도약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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