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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ME 오피니언 기고승인 2019.11.20 15:26 | 수정 2019.11.20 15:47
[기고-강낙진] ‘나’가 아닌 ‘우리’강낙진 안전보건공단 부산지역본부 사업총괄부장

출근시간대에 자주 듣는 모 방송의 라디오 프로그램이 하나 있다. 바로 ‘그대와 여는 아침’이다. 나와 종교와는 아무 관계가 없는 프로그램이다. 학창시절 잠시 DJ생활을 한 경험도 있고 이전부터 팝송을 좋아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라디오 방송에서 팝송을 들으면서 출근을 한다.

이 프로그램 중 아침공감이란 코너가 있다. 진행자가 청취자들에게 공감을 줄 수 있는 몇줄의 좋은 글들을 읽어 주기 때문에 공감이 간다. 

어느날 출근길에 이 코너에서 깜짝 놀랄만한 얘기를 들었다. 바로 ‘티벳인의 기도’다. 티벳인들은 기도를 할때 내(자신)가(이) 아닌 다른 사람들을 위해 기도를 드린다고 한다.

이 한마디에 깜짝 놀랐다. 왜냐하면 보통 기도를 하면 나 혹은 우리 가족, 아니면 나를 알고 있는 사람들 위주로 행복과 안전, 그리고 건강을 위해 기도를 하는 것이 아닌가? 내가 잘못 생각하고 있는지는 모르지만 선뜻 이해가 안됐다.

또 모 방송국에서 티벳의 마을을 취재한 내용을 들은 적이 있다. “불가사의한 것은 그들이 그처럼 가난함에도 불구하고 행복하기 그지 없다는 사실이었다. 그들이 항상 기도하고 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모두 남을 위해 기도한다는 것이며 자기 자신을 위한 기도가 아니라고 말했다. 쪼끌쪼글한 주름살마다 환하고 선한 표정이 가득한 중년의 노동자가 나를 뺀 다른 사람과 살아 있는 모든 생명들을 위해 기도한다고 말하는 모습은 충격이었다”라는 내용이었다.

여기에서 ‘티벳인의 기도’를 왜 얘기하는가 하면 산업안전의 세계에서 아주 중요한 부분이 여기에 숨어있다.

보통 안전이라 생각하면 현장(사업장)에서 일을 하는 과정에서 웃으면서 출근하고 웃으면서 퇴근할 수 있는 내 자신을 바라보며 오늘도 안전이란 마음을 굳게 다짐하고 일상생활을 접하고 할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안전이라 함은 내 자신뿐 아니라 내옆의 동료들까지 절대로 다치게 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즉 우리라는 개념을 절대로 잊어서는 안된다.

가끔씩 사망자가 발생하는 현장(사업장)의 예를 들어보자. 기계, 장비 등의 보수·수리·정비할 때 종종 사망자가 발생한다. 한마디로 어처구니 없는 개인의 실수로 인해 나 아닌 다른 사람들, 즉 자기 곁에서 열심히 작업을 하는 동료를 사망케 하는 사고를 일으키는 것이다.

이러한 사고를 방지키 위해 아주 간단한 태그를 사용한다든지 아니면 그냥 복사용지에라도 ‘수리 중’, ‘보수작업 중’ 혹은 ‘전원 절대 ON 금지’라는 표시라도 했으면 사망사고는 절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이러한 사고는 내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개인의 실수가 아니라 동료를 살인한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생각된다.

여기서 안전은 결코 나만 안전하면 된다는 식의 사고방식을 가져서는 절대로 안되는 것이다. 내 개인의 안전뿐 아니라 동료들의 안전과 건강, 행복을 위해 철두철미한 안전의식이 필요한 것이다. 즉 ‘티벳인의 기도’처럼 내가 아닌 남을 위해 기도하듯이 우리들의 안전하고 건강한 생활을 위해 다시 한번 깨달아야 할 것이다.

우리나라 경제가 50여년만에 눈부시게 발전한 것은 이미 세계 모든 나라에서도 잘 알고 있듯이 외국 선진국에서 바라보는 우리나라의 산업안전보건제도 또한 세계에서 유일하게 50여년만에 발전한 나라라고 한다.

외국에서는 보통 100년 길게는 150년에 걸쳐서 이뤄진 안전보건제도가 한국에서 이렇게 빨리 정착된 것에 대해 감탄한다고 한다. 물론 바깥 사람들은 정부와 안전보건공단의 몫이 크다고 하지만 재해예방 전문기관, 안전을 위해 열심히 일하는 국민들, 그리고 언론 등에서 노력한 결과라고 본다.

하지만 지금의 우리나라 산업안전보건의 현실은 어떤가? 여러가지 이유에 의해 사고가 일어나고 사망자가 발생하지만 그 중에서도 떨어짐의 사고로 인해 많은 노동자들의 목숨을 빼앗아가고 있다. 그것은 ‘재래형 사망사고로 인해’라는 단어로 자주 입에 오르내린다.

중국 전국시대의 사군자 중 제나라의 재상 맹상군의 이야기는 잘 알고 있을 것이다. 그의 3000명의 식객 중에 거지 출신인 풍훤이라는 사람이 있었다. 풍훤은 재상으로 모신 맹상군이 새로 즉위한 민왕의 미움을 받아 재상자리에서 쫓겨나지만 그 순간 정치적인 위기에서 대책을 마련해 다시 재상으로 오르게 한 사람이다.

그 대책 중 세가지, 즉 첫째는 은혜와 의리, 둘째는 등용(登龍), 셋째는 제기(祭器)에 의해 고침안면(高枕安眠·편안하게 베개를 베고 잠자는)할 수 있었다. 그 대책을 교토삼굴(狡兎三窟)이라고 하며 이와 연관된 고사성어로는 유비무환, 토영삼굴(兎營三窟)도 있다.

이리하여 맹상군은 풍훤의 도움으로 수십년 동안 큰 화를 입지 않고 지속적으로 정치를 할 수 있었다. 이것은 풍훤에 의해 세가지 보금자리를 마련한 것이고 불안한 미래를 위해 미리 준비해 뜻하지 않은 불행이 찾아오지 않도록 하는 의미를 담고 있다.

교토삼굴, 토영삼굴의 뜻은 토끼는 위험에 대비해 미리 세개의 굴을 파놓아 자신의 안전을 위해 미리 몇가지 술책을 마련한다는 뜻이다. 토끼의 그 연약함 속에서도 안전지책(략)은 가장 안전한 대책, 한치의 실수도 용납하지 않는 계책을 말하는 것이다.

이와 더불어 비 오기 전 줄지어 나무에 오르는 개미들과 중국 쓰촨성의 대지진이 일어나기 전 수많은 두꺼비떼들이 육지로 올라오는 모습 등은 보통 2~3일 전 폭우가 쏟아질 것이라는 것과 지진이 일어나기 전에 움직이는 행동들이라고 한다.

이러한 모습들을 해외토픽 등을 통해 보았을 것이다. 토끼, 개미, 두꺼비들도 자신과 동료들의 안전을 위해 군집을 이뤄 며칠전부터 대피하며 살아 나가는 것이다.

고등동물 중 최고의 고등동물은 사람이라고 한다. 결론은 주변에서 흔히 일어나는 각종 사고사망자가 발생하는 것은 우리 모두가 합심해 잘해 나간다면 반드시 제거할 수 있고 반드시 예방할 수 있다.

따라서 우리는 우리의 후손들에게 인명을 존중하고 중시하는 우리 세대들의 모습을 물려 줘야 할 것이다.

사람들이 일상생활 속에서 흔히 말하는 삶의 질 향상은 별것이 아니다. 즉 웃으면서 출근해 웃으면서 퇴근하는 것이 최고가 아니겠는가?

안전신문  webmaster@safety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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