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애리 전 KBS 아나운서실장·건국대 언론홍보대학원 초빙교수

SNS 소통이 일상화되면서 직접 사람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는 일이 어색할 때도 있다.

목소리를 쓰지 않는 시간이 길어 막상 소리내어 말할 때 목이 잠긴 듯한 느낌을 받기도 한다.

일단 헛기침부터 하는 이들도 있다. 업무나 모임에서 한말씀이나 건배사를 요청받았을 때 마음의 준비부터 단단히 해 두지 않으면 당황하기 일쑤다.

말 잘하는 이들이 부럽기 그지 없다. 말할 자리에서 사람들을 만나 적어도 말하기에서 주눅들지 않고 내 마음을 잘 전달해 호감을 얻고 성과를 얻는 말씨를 가지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말씨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발음이다. 정확해야 한다.

우리말은 단모음 10개와 이중 모음 11개가 표준발음법의 기본으로 적시돼 있다.

실제로는 표기법에 나타나 있지 않지만 ㅓ, ㅕ, ㅝ에 나타나는 장음을 포함하면 세분화된 발음은 21개가 아니라 24개까지 늘어난다.

우리말은 모음이 풍부한 말이다. 자국어의 모음수가 5개인 일본인들이 한국어를 배울 때 모음 구별이 쉽지 않다고 한다.

입술을 평평하게, 동그랗게 잘 만들고 혀의 위치를 정확히 하고 장음 낱말을 잘 구사하는 것이 우리말을 우리말답게 하는 기본이다.

어려워 보이지만 장음 낱말은 첫음절에서만 지키면 되므로 국어사전을 찾는 노력을 조금만 기울이면 실천이 어렵지 않다. 예를 들어 ‘대통령’의 발음은 첫음절이 길다.

[대:통령]으로 다른 음절보다 약간 길게 발음한다. 그런데 ‘문재인 대통령’으로 이름과 붙여 말할 때에는 첫음절 이하의 발음이 되므로 [문재인대통령]으로 짧게 발음한다.

먹는 밤은 길게 발음하지만 군밤이 되면 음절이 짧아지는 것과 같다. 장단을 지키면 우리말의 억양이 살면서 운율의 맛도 생기며 품위있게 들린다.

연설문을 낭독할 때 자꾸 오독이 난다면 장음 단어를 찾아 표시를 하고 장음을 지켜보라. 오독이 사라진다. 발음의 길이는 단음에 비해 약간 긴듯 비율이 1.8대1 정도로 조금만 길게 하면 된다.

너무 길게 소리내면 말이 늘어지고 자기 나이보다 10살은 더 든 사람의 말투처럼 느껴질 것이다.

살짝 길게만 발음해도 상큼하고 정확하게 들린다. 또한 모음에서 주의할 점은 ‘오’와 ‘우’의 발음을 명료하게 하는 것이다. 입술을 동그랗게 벌려 소리낸다. ‘애’와 ‘에’를 구별해 발음하려는 노력도 필요하다. ‘애’가 ‘에’보다 입 벌림 정도가 크다. 조사 ‘의’의 발음을 방송인들은 [에]로 한다. 표준발음법은 [의]와 [에]를 둘다 허용하는데 방송에서 예외없이 [에]로 발음한다.

중세국어의 전통도 있지만 짧은 시간 내에 정보 전달이 용이하다는 편리성 때문이다.

우리말 자음은 입천장으로 혀끝을 올리며 소리를 낸다. 그런데 영어 조기교육의 영향 때문인지 앞니 근처 입천장으로 혀끝을 올리는 치조음인 ㅅ발음을 잘하지 못하는 젊은이들이 많다.

혀끝을 영어 [θ]처럼 해 마치 혀짧은 소리처럼 들려 거슬리는 경우가 많다. ㅈ발음을 영어식으로 유성자음화해 소리내기도 한다. 버려야 할 습관이다.

우리말의 기본인 자모음 음가를 정확히 발음하려면 입 모양을 제대로 만드는 연습이 필요하고 입을 평소보다 크게 벌리고 소리내어 읽는 것이 효과적이다.

하루 단 5분만이라도 문장을 낭독해 보라. 처음에는 발음에 신경써 소리내고 다음은 이야기하듯 말해 보라. 두세번 반복하면 내용이 절로 기억될 것이다.

그 다음은 거울 앞에서 발표하라. 이 과정을 녹음을 하며 해보고 다시 들어보면 더 효과적이다. 자신의 목소리, 억양, 포즈, 속도, 강세가 어떠한지 확인할 수 있다.

장음을 살려 말하면 우리말을 하기 쉬워진다. 신기할 정도이다. 연음을 할 때 칠종성 법칙에 따라 어간의 받침이 어떻게 변화하는지도 확인하라.

국립국어원의 표준발음법을 찾거나 사전을 찾아 궁금증을 해소하면 된다. 이렇게 표준어법을 지키면 스피치 품격이 절로 올라간다.

이런 노력을 하기 전과 확연히 달라진 것을 주위 사람들부터 느낄 것이다.

우리말이라서 사실 대충 발음해도 소통은 된다. 그러나 상대에게 신뢰를 주고 정중한 느낌을 주려면 말씨를 보다 정확하게 해야 한다. 우물거리는 발음 때문에 되물어오는 일이 있다면 곤란하다.

한번 말한 것으로도 상대가 쉽게 이해하도록 말씨에 정성을 담는 노력이 말하는 이의 격을 높여 주니 일거양득이다.

고대 그리스에서는 수사학으로 소피스트들이 큰 돈을 벌었다고 한다. 소크라테스는 속물적이라고 폄하했지만 당시 소피스트들은 설득력은 강력했고 인기를 얻고 있었다.

그 이유는 견문이 넓고 다양한 상황에 대해 소토론으로 학습을 시키고 이를 연설로 연결하는 수업을 진행했기에 소피스트에게 배운 스피치 기술은 실용적이었다.

이들은 구전으로 돌던 정보를 기억하고 정리해 최신 정보로 재가공해 청중에 따라 맞춤형으로 연설했다고 한다.

소크라테스 제자 플라톤도 자신이 꿈꾸던 철학자가 통치하는 시대를 앞당기려면 말의 기술 수사학이 필요하다고 건의해 아리스토텔레스가 ‘수사학’으로 소피스트 기술을 총정리했다.

2000년이 지난 지금도 연설자의 신뢰의 바탕인 에토스, 청중의 감동을 이끌어내는 파토스, 논리적인 설득의 바탕인 로고스는 스피치의 기본 골격으로 변함이 없다.

청중에게 신뢰를 얻는데는 명확한 우리말 구사력이 밑바탕임을 잊지 않았으면 좋겠다.

스피치로 성형하기는 우리말에 대한 기본을 되돌아 보고 국어사전을 가까이 하기에 달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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