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병철 한국창직역량개발원장

IBM의 왓슨(Watson)은 1초에 80조 번에 이르는 연산능력으로 1초에 100만권의 책을 읽어낸다.

이미 지난 3년간 100만권의 책을 데이터로 저장해 상호 연관시켜 분석하는 능력을 갖췄다.

우리 인간은 책 한권을 외우는 것만으로도 천재소리를 들을 것이다. 독서를 많이 하는 것이 좋다고 한다. 독서량을 자랑하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그 책의 내용을 외워서 융합하고 통섭해 내는 사람은 거의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런 점에서 과거와 기억은 인간이 따라갈 수 없는 영역이 됐다.

앞으로의 일이나 작업 속에서 위험요인을 찾아내는데는 상상력이 발동돼야 한다. 이런 점에서 안전관리는 과거가 아니라 미래를 예측하는 역량을 말하는 것이다. 필자가 안전교육에 인문학을 접목하는 것은 이러한 이유에서다.

우리는 안전을 상상력을 제한하고 규제하는 것으로 인식한다. 결코 그렇지 않다. 작업환경이나 방법은 급속하게 변화된다. 그것을 매뉴얼이나 규제·통제하려고 하면 항상 한발 늦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우리 사회가 대형사고를 겪고 나면 또 규정을 만드는 식의 사후약방문식 안전수준에 머물고 있는 것은 바로 안전을 미래의 관점으로 보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만약 이러한 태도라면 앞으로는 사후약방문식 대처도 바쁘게 될 것이고 더 나아가서는 그것마저도 불가능하게 될지 모른다. 변화의 속도가 너무나도 빠르기 때문이다.

둘째 4차 산업혁명은 위험에 대한 기술적 대책으로 표출된다. 안전관리를 비용의 관점으로 보느냐 성과의 관점으로 보느냐는 오랜시간동안 계속된 안전분야 논쟁거리다.

성과보다 중요한 것이 안전이라는 US스틸의 게리 회장이 주창한 안전제일이라는 구호가 사업장마다 부착돼 있지만 아직도 안전은 비용의 요소로 인식된다.

구글에 의하면 자율주행차가 일반화되는 2050년이면 교통사고가 90% 이상 감소한다는 예측을 한다. 결국 그들은 위험을 통제하는 기술을 통해 돈을 버는 것이다. 산업용 로봇, 소방용 로봇, 드론을 이용한 인명구조, 빅데이터를 이용한 사고예측 등 자세히 들여다 보면 4차 산업혁명은 안전혁명이라고 해도 될만 하다.

안전을 성과의 관점으로 봐야 하는 이유다. 이제 안전이 생산과 성과의 요소로 등장하고 있는 것이다.

셋째 안전관리 부서가 한직이 아니라 요직이어야 한다.

필자가 하는 강의 중 ‘맹자에게 안전을 묻다’에서 하는 말을 인용해 보고자 한다.

맹자에 ‘무항산(無恒産)이면 무항심(無恒心)’이란 말이 있다. 생산(이득) 없는 곳에 마음이 없다는 말이다.

인재의 중요성은 두말할 필요도 없다. 우수한 인재란 미래에 대한 상상의 수준이 높고 그것을 실행할 수 있는 역량을 갖춘 사람이다.

안전신문 독자 여러분께 질문을 하고자 한다.
우리 조직에서 안전관련 부서는 요직인가 한직인가? 한번 자문해 보자.

누구라도 기피하는 부서인가? 그저 적당히 퇴직하기 직전에 거쳐하는 한직인가? 책임에서 자유롭지 못하고 신경쓸 일이 많다. 누구도 근무하고 싶어하지 않을 수 있다.

당연히 안전관리업무가 능동적이기 쉽지 않다. 욕만 안먹으면 된다는 소극적 태도가 형성될 수밖에 없다.

더 심각한 것은 늘 핑계가 합리화될 수 있다. 하려고 해도 무엇 때문에 어렵다, 힘들다, 안된다는 식의 변명이 계속되는 이유는 바로 안전부서가 한직이기 때문이고 한직에는 권한이 부여되지 않기 때문이다.

안전부서가 요직이 돼야 한다. 안전부서를 거치지 않고는 승진되지 않게 해야 한다. 안전업무를 보지 않은 사람은 임원이 되지 못하게 해야 한다.

결국 안전부서가 유항산(有恒産)이 되면 유항심(有恒心)되는 것이다. 자신에게 이득이 돼야 마음이 갈 것이다. 안전을 하면 이득이 되게 해야 한다. 그렇게 해야 우수인재가 안전에 관심을 갖게 된다.

흡사 스티브잡스에 의해 ‘인문학이 돈이 된다’는 것이 증명되고 나니 인문학 열풍이 부는 것처럼 말이다.

쇼펜하우어는 말했다.

“평범한 두뇌와 영리한 두뇌의 차이 중 하나는 평범한 두뇌는 일어날지도 모르는 위험에 대해 과거를 반추하지만 영리한 두뇌는 어떤 일이 일어날 가능성이 있는가를 숙고한다.”

재난이 일어날 가능성을 막기 위해서는 노고나 시간, 불편함, 번거로움, 가난, 고난, 결핍 등 무엇인가를 어느 정도 희생할 것을 각오하고 이를 두려워해서는 안된다.

무엇이 영리한 것인가? 미래에 일어날지도 모르는 가능성을 숙고한다고 했다.

영리한 두뇌를 가진 사람이 안전업무를 담당하게 해야 하고 그런 사람이 오게 하려면 유항산이어야 한다.

미래를 보는 역량의 크기가 안전의 수준이다. 미래를 상상하고 만들어 낼 수 있는 인재가 4차 산업혁명시대의 핵심 역량이라고 누구나 이구동성으로 제시한다.

그 미래를 상상하는 역량이 바로 안전관리의 수준이 될 것은 자명한 일이다.

우리 사회와 직장 어디에 위험이 존재하고 있을지 상상하고 예측할 수 있어야 한다.

다시 말하지만 4차 산업혁명은 결국 안전관리 혁명을 말한다. 안전이 과거에서 미래로, 비용에서 성과로, 한직에서 요직으로 변화돼야 하는 이유다. 

최병철 cbc1234@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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