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병철 한국창직역량개발원장

4차 산업혁명이 미래를 대변하는 말이 된 지 오래다. 미래사회가 어떻게 될 것이라는 예측이 난무하고 있고 각 분야별로 세부적인 그림을 그리고 있다.

그러나 4차 산업혁명시대에 안전관리는 어떻게 될 것인가에 대한 논의는 매우 부족한 듯 싶다.

4차 산업혁명시대에 안전수준을 향상시킬 수 있는 방안 3가지를 제언해 보고자 한다.

그동안 증기기관과 대량 생산혁명을 말하는 1·2차 산업혁명, 그리고 정보통신에 의한 3차 산업혁명이 있었다.

모든 사물에 ICT, ICBM의 기술이 접목되는 것에 의한 혁명을 4차 산업혁명이라 한다.

예를 든다면 우리가 사용하는 책걸상에 센서가 붙고 사물인터넷에 의해 센싱된 데이터가 클라우드에 저장돼 빅데이터로 분석된다. 분석된 결과가 각종 조명이나 높이 조절, 더 나아가서는 건강정보로까지 활용된다.

이렇게 되면 지금까지 우리가 알던 책걸상이 아닌 것이다. 우리가 매일 이용하는 교통수단의 변화가 가장 두드러질 것으로 예측된다.

자율주행을 하게 된다. 주행 중 자동충전이 이뤄지고 이동 중에 센싱(sensing)된 각종 정보가 실시간 분석된다. 도로이용 효율이 급격히 증가돼 추가적인 도로망을 확충하지 않아도 된다.

컴퓨터가 스마트폰에 들어왔다면 이제 컴퓨터가 자동차 속으로 들어간다. 이제 자동차가 이동하는 컴퓨터가 되는 것이다. PC가 있는 곳이 사무공간이 된다. 그렇다면 사무실이 필요없어지고 사무실이 필요없다면 출퇴근도 의미가 없어지는 것이다. 이러한 사회의 변화를 누가 선점할 것인가를 두고 세계 열강들은 치열한 각축을 벌이고 있다.

미·중간의 경제전쟁은 엄격한 의미에서 4차 산업혁명시대의 패권싸움이라는 것이 일반적 해석이다.

세계 네트워크 장비시장의 60% 이상을 점하고 있는 화웨이에 대한 미국의 경제제재는 결국 사물인터넷과 통신에 대한 패권을 빼앗기지 않으려는 시도다. 실제로 최근 화웨이에게 애플은 스마트폰시장 세계 2위 자리를 빼앗겼다.

중국이 천문학적인 투자를 했던 메모리 반도체산업에 미국이 반도체장비 수출금지를 한 것도 산업적으로 종속되지 않으려는 의도가 있다고 보는 것이 일반적 시각이다.

수출제한조치, 일명 화이트리스트 국가 제외로 촉발된 작금의 한·일간의 상황은 그 정도가 훨씬 심각하다.

정보화시대에서 모바일시대로 넘어가는 상황에서 그 주도권을 빼앗긴 일본으로서는 4차 산업혁명시대 마저도 그 패권을 빼앗기려 하지 않는 것이다. 

일본의 전자산업쪽에서 상위 10개 기업을 보면 히다찌, 파나소닉, 미쓰비시, 도시바, 소니, 후지스, 애니시, 샤프, 캐앤쓰, 캐논이다.

소니의 경우 80년대 우리나라가 절대 넘어설 수 없는 기업이라고 했는데 이 10개 회사들이 2018년도에 낸 영업이익을 보면 278억달러다. 한화로 약 30조원 그리고 매출액이 4862억달러다.

반면에 우리나라 삼성전자가 지난해 낸 이익이 535억달러로 일본의 10개 기업 모두 다 모은 것이 우리나라 삼성전자의 절반밖에 안된다.

또 매출액이 삼성전자가 2216억달러로 우리나라 삼성전자 매출액 이익률이 24% 정도 되는 것이고 일본의 대표적인 회사들의 평균적인 매출액 영업이익률이 6% 정도다.

우리나라 입장에서는 자랑스러운 일이지만 일본 입장에서는 뼈아픈 일이다. 이러한 아픔을 4차 산업혁명시대에도 계속 이어가고 싶지 않을 것은 자명한 일이다.

이러한 세로운 세상에서의 기득권과 패권을 확보하려는 경쟁은 가히 전쟁을 방불케 한다. 그런데 이러한 4차 산업혁명시대의 변화를 안전관리라는 측면에서도 바라볼 필요가 있다.

혁명은 모든 개념을 새롭게 정의내린다. 이때 안전에 대한 개념을 어떻게 규정하느냐는 4차 산업혁명시대의 안전에 대한 위상을 포지셔닝(positiong)하는 것이기도 하다.

안전을 변화의 반대개념으로 인식하는 한 안전의 수준은 변화되지 않을 것이다.

변화를 거부했던 우리 민족의 뼈아픈 과거가 순간은 안전할 것 같았지만 결국 식민지배와 남북분단과 전쟁의 위험에 맞딱뜨리게 했고 지금까지도 치열한 이데올로기 정쟁과 국력소모라는 결과로 이어지고 있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변화는 위험이 아니라 안전’이라는 발상의 전환이 필요한 이유이다.

그 몇 가지 이유를 대안으로 제시한다.

첫째 안전관리는 미래의 문제인가 과거의 문제인가?

우리나라가 안전 후진성을 면치 못하는 이유를 기술적으로 볼 수 있겠지만 결국 의식수준에서 해석하는 경우가 많다.

그렇다면 의식수준이 높다는 것은 무엇을 말하는가? 과거에 집착하는 것을 의식이 높다고 하지 않는다.

후진국은 과거를 말하고 중진국은 오늘 먹고사는 문제를 말하고 선진국은 미래를 말한다는 말이 명쾌하다. 결국 의식이 높다는 말은 미래를 생각하는 수준을 말한다.

결론적으로 안전후진성은 안전의식에 기인하고 안전의식이 낮다는 것은 미래를 볼 수 있는 눈이 낮다는 것이다.

미래를 보지 못하는 것은 상상력이 없는 것이고 그 상상력을 창의력이라 한다.

결국 안전이 창의적으로 되지 않는 것이다.

4차 산업혁명시대에는 과거의 것을 얼마나 기억하느냐는 경쟁력이 되지 못한다.                  

최병철 cbc1234@hanmail.net

저작권자 © 안전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