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일두 여수시도시관리공단 안전관리자

필자는 오랫동안 취미로 서예를 해왔다. 화선지 위에 검정 먹물을 채우는 흑과 백이 이루는 대비와 각자 모양과 형태가 다른 획이 모여 하나의 글자를 이루는 합일성이 좋았다.

또 정신 의식이 손목의 힘으로도 부드러운 붓을 이기지 못하고 한번 쓴 글씨는 지우거나 덧칠하지 못하는 것이 서예의 묘미다. 자기 자신을 속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붓글씨는 하루아침에 이뤄지지 않는다. 글씨가 쉽게 완성되지 못하는 것이 서예의 미학이다. 우리네 인생과 닮았다.

서예는 자신이 만족할 수 있는 좋은 작품을 바로 얻지 못하고 오랫동안 이를 보완하는 방법으로 다음번 글씨 획의 위치를 바꾸거나 모양을 바꿔 전체적인 조화를 이루는 과정이 삶의 관계를 투영하는 예술 활동이다.

작가의 마음에 맞는 하나의 작품을 탄생키 위해 강함과 부드러움을 섞어도 보고 글자의 크기에 있어서 크게도 해보고 과감히 작게도 구사해 본다. 또 글자와 글자 사이에 비움을 둬 여백의 중요함을 강조해 보기도 한다.

한문 서예를 하면서 느낀 점은 한자가 그 뜻에 의미가 있고 기본이 되는 글자(字), 즉 큰 대(大), 지아비 부(夫), 어미 모(母), 사람 인(人), 하늘 천(天) 자 등이 쉽게 쓰일듯하지만 실상 붓을 잡고 화선지에 써보면 매우 어렵다. 붓글씨에 새로 입문하는 사람이나 중간단계의 수련자에게 이러한 글자를 써보라 하면 매우 힘들어한다. 그만큼 삶의 의미가 담겨 있는 글자는 힘든 것이다.

또 다른 하나는 작품 속에 들어가는 모든 한자나 한글은 서로가 빼어남을 주장하지 말아야 한다. 각자 주어진 한자 한자가 서로 잘났다고 뽐내면 그 조화로움을 상실해 디자인처럼 변한다. 한자의 변방이 약하고 부족하면 주변 다른 획이 그 결함을 보상하고 감싸 안아야 한다. 글도 서예도 더 나아가 인생도 꾸미고 덧칠할수록 추해진다.

아무리 좋은 명문 작가의 작품과 훌륭한 서예작품도 그 사람의 인격이 훌륭하지 않으면 아무런 의미가 없다. 작품이 그 사람의 인격이 아니고 얼굴이 그 사람의 작품이다.

서예작품이 어느 정도 완성되면 나머지 순서로 화제 글씨와 낙관을 찍는 마무리 순서가 있는데 이 작업은 본 글씨와 더불어 매우 중요한 작업이다. 안목이 높은 감상자는 화제(畵題) 글씨와 낙관(落款)을 보고 작품을 평가한다.

많은 분들은 서예작품의 중심부 필체가 중요하다고 생각해 변방에 위치한 화제 글씨를 소홀히 한다. 그러나 마무리하는 글씨체는 결코 소홀히 해서는 안 된다. 중심부와 호응하고 결합함으로써 작품의 완성도가 더 높아지기 때문이다.

낙관을 찍는 위치도 매우 중요하다. 작품 전체의 공간의 배열과 맞아야 한다. 낙관의 크기도 글씨와 함께 어울려야 하며 인주의 색깔도 중요한 구성요소다. 결코 어느 부분 하나도 쉽게 간과해서는 안 된다.

서예활동을 오랫동안 하는 서예가들은 직접 작품에 들어갈 전각(篆刻)을 스스로 돌에 새기는 작업을 한다.

전각 작업은 단단한 돌에 생명을 불어 넣은 매우 창조적인 예술 활동이다. 전각에서 돌에 새김질할 때 일도 일각이라 해 두 번 칼질하지 않는다. 한번 실수하면 끝이다. 서예는 덧칠하지 않고 전각은 한번 실수하면 무용지물이다.

안전(安全)에서 편안할 안(安)이라는 글자의 자형을 보면 풀초 자가 위에 얹히고 아래에 계집 녀(女)가 있다. 초가지붕 밑에 사랑스러운 아내가 편히 있어야 가정이 안전하다.

또 전(全)이라는 자형을 보면 들입(入)이 위에 있고 그 아래에 임금(王)이 있다. 이는 임금이 대궐을 벗어나지 않고 궁궐 내에 있어야 온전하다는 이야기다.

조선시대에 겪었던 호란과 왜란만 보더라도 그 의미를 우리는 쉽게 알 수 있다.

우리는 길(吉)과 흉(凶)의 반복된 삶 속에서 생을 이어 나간다. 길(吉) 자의 자형을 보면 선비 사(士) 자에 입구가 더해지는 형상이다. 이는 입이 아니고 네모난 구덩이에 빠지지 말라는 표시다. 그러한 표시를 해놓으면 구덩이에 빠지지 않아 다치지 않으니 길하다는 의미로서 좋다는 것이다.

다음으로 흉(凶)을 살펴보면 우리가 영화에서 짐승을 잡을 때 구덩이를 파 놓고 꼬챙이와 낙엽으로 위장한 다음 그곳에 빠지면 잡는다. 동물들은 이 표시를 발견하지 못하고 구덩이에 빠지면 죽음의 나락으로 빠진다.

안전한 사회도 예술작품을 감상하는 일과 예술 활동을 하는 일과 별반 다르지 않다. 안전하고 재난 없는 사회는 행복이 가득한 사회이며 불안전한 사회와 직장은 마비되고 소통이 안되는 마취된 사회이다.

전각을 일도 일각이라 해 두 번 칼질하지 않고 서예는 덧칠하지 않으며 안전은 한번 실수하면 자칫 죽음으로 이어질 수 있다. 이 세 가지가 일맥상통함을 되새겨야 한다.

김일두 kimildoo37@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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