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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ME 오피니언 칼럼승인 2019.07.24 17:43 | 수정 2019.07.24 17:43
[권화섭 칼럼]교통안전문화와 ‘인과의 오류’

한국의 길거리는 결코 안전한 곳이 못된다. 그 증거는 따로 찾아볼 필요가 없다. 바로 길거리에 즐비하게 늘어서 있는 교통안전 표지판과 단속기기들이 그 반증이기 때문이다.

한국의 길거리는 왜 안전하지 않나?

그 이유는 ‘안전문화’는 젖혀 놓고 단지 기계적으로 안전을 보장하겠다고 만용을 부리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성급함 때문에 한국사회는 교통사고는 줄이지 못하면서 교통 불편과 지체로 인해 엄청난 비용을 치르고 있다.

한국의 부끄러운 교통문화

한국의 길거리에서는 무시(無時)로 차량통행을 가로막고 단속을 벌이는 일을 자주 목격한다. 과거에는 주로 치안 단속이었는데 언제부터인가 음주단속으로 일원화됐다.

그런데 ‘조지 오웰 현상’이랄까 음주단속이 강화되면 될수록 한국의 길거리 안전은 나아지기는커녕 더욱 불안스러워져 결국 ‘소주 한잔’도 용납하지 않겠다는 극약 처방까지 쓰게 됐다.

필자의 경험으로 이런 해프닝 아닌 해프닝의 원인은 우리의 ‘교통문화’가 다른 나라들에 비해 한참이나 뒤쳐져 있기 때문이다. 비유컨대 영국의 교통문화는 ‘신사운전’이라면 미국의 그것은 ‘준법운전’이고 우리의 경우는 ‘눈치운전’ 일색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한국의 길거리에서는 단속기기만 보이지 않으면 어느 차량이고 교통법규를 지키려 하지 않는다. 대형 트럭은 물론이고 고급 외제 승용차나 소형 경차까지 일반도로와 고속도로를 불문하고 규정 속도를 지키는 차량은 찾아 보기 힘든 것이 우리의 부끄러운 자화상이다.

미국의 고속도로에서도 이른바 ‘에이틴 휠러(바퀴 18개의 대형 트레일러 트럭)’의 폭주에 가슴 섬뜩한 경우를 빈번히 당하게 된다. 그러나 뉴욕 맨해튼의 길거리나 주택가 뒷골목을 질주하는 택시들은 과속은 할지언정 ‘일단정지’ 표지만은 확실히 지키며 그러기 때문에 충돌사고를 피할 수 있고 설사 사고가 날지라도 우리나라처럼 그 책임 소재를 가리기 위해 언쟁을 벌일 필요는 없다. ‘일단정지’ 표지가 있는 쪽의 차량이 100% 사고 책임을 떠안아야 하기 때문이다.

영국인들의 운전방식은 한국의 교통문화가 얼마나 ‘후진적’인지를 여실히 보여준다. 지난 1986년 1년 가까이 런던에 머물면서 필자는 운전 중에 여러번 얼굴이 붉어지는 당혹스런 경험이 있다.

신호등이 없는 횡단로를 지나면서 다른 차들이 멈추는데 필자는 그냥 지나간 것이다. 처음 한두달간은 다른 차들이 왜 멈추는지 몰라 의아스러웠다. 그러나 비록 횡단로를 건너는 사람이 없을지라도 보도 위에서 길을 건너려고 기다리는 사람이 있으면 영국 운전자들은 멈춰 선다는 것을 알고 나도 모르게 얼굴이 화끈거려진 것이다.

넓은 의미에서 문화란 ‘특정 유형의 인간 생활에서 특징적인 모든 행태’로 정의된다.
따라서 영국의 교통문화는 미국의 준법운전보다 한차원 높은 ‘자율적’ 안전운전으로 규정할 수 있겠다.

한국의 교통문화는 못말리는 눈치운전으로 단속경찰이나 카메라가 없으면 흡사 치킨게임식 운전에 직면하게 된다.

각국의 교통문화는 그 나라 국민의 안전의식을 반영한다. 한국의 교통문화는 세계적으로 성급하고 참을성 없기로 정평이 나 있는 우리 국민의 특징을 잘 드러내고 있다.

그러기에 법규와 단속을 강화하는 것만으로는 우리의 길거리 안전을 확보하는데는 근본적인 한계가 있다.

인과의 오류와 합리적 접근 

한국 길거리에서 안전의 주적(主敵)은 다른 누구도 아닌 바로 우리 자신이다.

우리의 안전의식이 근본적으로 바뀌지 않으면 도로의 안전은 결코 나아질 수 없다.

그런데도 우리는 도로 그 자체의 구조나 우리의 운전행태 등 안전운전의 근본문제는 젖혀놓고 사고가 나면 당장 법규를 바꾸고 단속을 강화하는 ‘사고와 단속’의 경연을 벌인다.

논리학에 ‘인과의 오류’라는 용어가 있다. ‘닭이 울면 동이 튼다’고 생각해서 한밤중에 억지로 닭을 울게 하려는 어리석음을 경계하는 말이다. 비록 그 정도로 엉뚱한 일은 아닐지라도 교통사고에 대한 우리의 대응 역시 다분히 그런 측면이 없지 않다.

음주운전은 결코 해서는 안되며 그로 인해 빚어지는 사고는 사전 적발과 예방이 최선이다. 그러나 단속과 처벌만으로는 음주운전을 완전히 없앨 수 없다. 결국 음주운전 사고가 있을 때는 엄격한 처벌을 통해 재발의 유혹을 최대한 차단토록 해야 한다.

다만 이때에도 우리는 왜 미국에서 총기사고가 빈발하는데도 일반 국민의 총기 소유를 전면 금지하지 않는지, 음주사고가 전혀 없는 것도 아닌데 그 적발을 위해 일제단속을 하지 않는지를 한번쯤 헤아려보는 여유를 가질 필요가 있다.

그 이유는 미국인들의 의식이 총기 소유를 개인적 안전과 권리를 지키는 자위수단으로 여기며 길거리 일제단속을 개인적 자유의 침해로 간주하기 때문이다. 

이런 미국사회가 꼭 바람직한 것도 아니고 또 따라가야 할 이유는 없다.

그러나 우리 사회의 안전문화에 관해 한편으로 국민적 안전의식의 변화를 기다리며 단속과 처벌에서도 우리 특유의 성급함을 억제하며 한층 합리적인 접근을 주문하고 싶을 따름이다.

권화섭 hwasupkwon@hanmail.net

안전신문  webmaster@safety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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