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전등화(風前燈火)는 바람 앞의 불이다. 센 바람이 불면 등불은 꺼진다. 그러나 이 불이 불씨가 되면 강원 산불처럼 대화를 일으킨다. 이 불바다를 만드는 것이 바람과 불이다.

바람과 불의 관계를 적나라하게 보여준 것이 이른바 삼국지연의의 조조가 유비와 손권의 연합군에게 대패한 적벽대전(赤壁之戰)이다.

북방을 통일한 조조는 208년 가을 30만 대군을 거느리고 형주를 치려고 남으로 내려왔다. 그때 유비와 손권이 서로 연합해 조조에게 대항키로 했다. 손권은 주유를 대도독으로 삼아 정예군 3만을 거느리고 장강을 거슬러 올라가 유비의 군대와 회합했다. 유비와 손권의 연합군은 적벽 장강 남쪽에 군대를 주둔시켰다.

조조가 연환계(連環計)를 채택, 수군의 크고 작은 배들을 십여척씩 쇠사슬로 한데 묶은 다음 배 위에 넓은 판자를 깔아 군대가 쉽게 움직이도록 했다.

궁지에 처한 장강 남쪽의 연합군은 화공(火攻)의 묘책을 선택했으나 문제는 바람이었다. 바람이 불어야 화공이 가능해지기 때문이다. 화공에 필요한 만반의 준비를 했으나 동남풍이 일어야 했다. 동남풍이 잘 불지 않는 시기였지만 또 그것이 가능한 때라는 것도 알고 있었다. 생사는 오직 이 바람에 달렸다.

208년 동짓날, 밤이 되자 동남풍이 불기 시작했는데 시간이 갈수록 점점 더 거세졌다. 화공에 불이 붙은 조조의 배들은 세차게 부는 동남풍에 활활 타서 재가 됐다.

바람 앞에 불씨를 둬서는 안된다. 화공에 무너지는 조조의 배들처럼 강원 산들도 온통 불바다에 휩싸였다.

이렇게 불처럼 무서운 게 없는데 우리들이 불을 우습게 아는 모양이다. 이를 불감증이라고 해야 하나, 불 불감증이라고 해야 할까.

전국 대형 공사장 141곳에서 화기 취급 부주의 등 163건의 위반사항이 적발됐다.

소방청이 지난달 18일부터 지난 1일까지 전국 대형공사장 141개소에 대한 안전관리 실태점검을 해봤더니 정말 불에 대한 불감증이 가관이 아닌 것으로 드러났다.

이번 점검은 소방청과 18개 시·도 소방본부 감찰부서가 합동으로 실시한 본격적인 것이었다.

임시소방시설 설치의 적정성, 화기취급 부주의, 위험물의 저장·취급의 적정성, 기타 안전관리에 관한 사항 등을 두루 살폈다.

소방청은 적발된 163건 중 중대 위반사항 9건에 대해서는 소방특별사법경찰에 의해 수사 예정에 있고 28건은 과태료 처분을, 48건은 시정보완명령 등의 행정처분을 실시 할 예정이며 78건은 즉시 현지시정 조치했다.

불을 두려워하지 않는 이들의 위반사례를 보면 정말 갖가지다. 용접·용단 등 불꽃을 튀길 수 있는 작업을 하면서 기본인 간이소화장치 등 임시소방시설을 설치하지 않았다. 시설을 했다 하더라도 제대로 하지 않았다. 이런 것들이 더 위험하다.

공사를 진행할 때 소방공사 상주감리원과 소방기술자를 배치해야 한다.

그럼에도 사람은 없고 허위로 감리일지를 작성하는 등 소방시설 공사업법을 위반하고 있었다.
소화기를 배치하지 않고 용접하는 행위는 간이 크다기 보다 만용에 가깝다.

가연물을 주변에 방치하고 용접작업을 하는 용기는 어디서 나온 것인가. 적발이 문제가 아니라 목숨 아까운 줄 모르는 안전 무시 관행이 여전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번 강원 산불과 관련해서도 숨은 이야기들이 많다.

강원 속초시 장사항 초입에 있는 2층짜리 횟집 건물에 산불이 옮아붙었다. 모여든 상인들이 각자 할 수 있는 방법대로 물을 떠다 뿌렸다. 횟집 수조에 바닷물을 채우던 파이프는 이날 100m 길이 호수가 연결된 ‘임시 소화전’이 됐다. 이럴 때 제구실을 한 것이다.

횟집은 불탔지만 뒤로 다닥다닥 붙어 있던 다른 가게들은 피해를 면했다. 상인들은 불이 너무 세서 눈도 아프고 머리도 그을렸지만 나와 이웃을 지키자는 마음에 새벽까지 사투를 했다.

속초에서는 음식 배달원들이 배달 오토바이를 가져와 시민들을 안전한 곳으로 대피시켰다.

이번 강원 산불이 엄청난 큰불 임에도 비교적 피해가 적었던 것은 소방관, 경찰, 군인, 그리고 용감한 시민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돌아보니 이번 산불진화에는 소방관 1985명, 경찰관 1700여명, 군 1만200여명이 투입됐다. 주한미군도 헬기 2대를 투입해 진화를 도왔다.

강원도 고성군 토성면에 있는 까리따스 요양원이 불길에 휩싸였을 때 시설 안에는 80~90대 노인 환자가 많았다. 허겁지겁 달려온 소방관들은 펌프차로 물을 쏘면서 불길 사이를 뚫고 들어가 환자와 직원 등 61명을 구조했다.

네티즌들도 SNS를 통해 한몫을 했다. 인스타그램으로 대피소 위치와 재난상황시 대피요령을 날렸다. 활약이 돋보였다.

그간 대형 재난을 거치면서 우리의 소방능력이 크게 향상됐다.

그러나 그보다 중요한 것이 예방이다. 불이 나지 않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 안전의식으로 무장하는 것이 우리의 살길이다.

저작권자 © 안전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