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성호 단국대 건설방재안전공학과 교수/재난과학박사/건설안전기술사/한국건설안전학회 부회장

베스트셀러 작가로 유명한 유발 하라리는 그의 저서 ‘사피엔스(Sapiens)’에서 약 3만년 전까지만 해도 지구상에는 최소한 여섯 종의 호모(사람) 종이 있었다고 한다.

예를 들어 동부아프리카에는 우리의 조상인 호모 사피엔스가, 유럽에는 네안데르탈인이, 그리고 아시아 일부에는 직립원인이 거주했다. 모두가 호모, 즉 사람 속(屬)의 구성원이다.

하지만 오늘날에는 우리 종밖에 남지 않았다. 호모 사피엔스가 세상을 지배하게 된 것은 다수가 유연하게 협동할 수 있는 유일한 동물이기 때문이다.

이같은 협동이 가능한 것은 오로지 상상 속에만 존재하는 것들을 서로 믿고 신뢰하는 독특한 능력 덕분이라고 한다. 신, 국가, 돈, 인권 등이 그런 예다.

안전도 실체를 볼 수는 없지만 상상 속에 존재하는 것들 중의 하나일 것이다. 태안화력발전소 청년 근로자가 노동을 제공하는 것은 사업주가 자신의 안전을 보장해 줄 것이라는 사회적 합의를 믿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고 꽃다운 고교 3학년 학생들이 숙박비를 지불하고 펜션을 이용하는 것은 업주가 최소한의 안전을 보장해 줄 것이라는 믿음과 신뢰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이러한 믿음과 신뢰가 산산히 깨진 결과를 우리는 사고 또는 재해라고 부른다.

그렇다면 반복되는 사고 발생의 근원적 원인은 무엇이며 이를 극복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인가? 세계적인 석학 피터 드러커(Peter Ferdinand Drucker)는 국가든 사회든 그 조직을 강화하고 그 조직으로부터 효과적인 결과를 기대하기 위해서는 두가지 선결조건이 필요하다고 했다.

첫번째는 조직에 몸담고 있는 사람들의 수준높은 질(質)이고 두번째는 그 사람들에게 철저히 책임을 부여하는 것이다. 여기서 말하는 질은 교육을 의미하고 책임은 신상필벌을 뜻할 것이다.

대부분의 사고도 그 원인을 보면 피터 드러커가 제시한 ‘두가지’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하나는 알고도 하지 않아(무시) 발생하는 사고이고 또 다른 하나는 몰라서 못해(무식) 발생한 사고다.

전자의 해결방법은 생각보다 간단하고 명료하다. 바로 신상필벌(信賞必罰)이다. 사업주에게 사고처리보다 사고예방이 훨씬 더 남는 장사라는 믿음을 주면 된다.

사망재해가 발생할 경우 기업이 망할 정도로 천문학적인 벌금을 부과하는 선진국의 사례는 우리에게 좋은 본보기가 될 것이다. ‘돈을 벌려고 하는 자, 돈으로 다스려라’라는 말과 일맥상통하지 않을까 싶다.

그러나 그동안 우리는 일제로부터의 해방과 한국전쟁 이후 세계 최고 빈민국가라는 오명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한 몸부림, 그리고 먹고 살기 위한 고도 압축성장과정에서 안전사고에 대해 너무나 관대했다.

말 그대로 5000년 역사가 만들어 낸 ‘온정주의’가 우리나라 산업재해 수준을 이 지경에 이르게 한 장본인이다. 한국의 안전이 낙후를 면치 못하는 이유는 온정주의에 의한 합리주의 결여 때문이다.

서구의 합리주의가 가끔은 인정머리 없고 피곤해 보여도 익숙해지면 이것만큼 공정하고 편리한 것도 없다. 다른 건 몰라도 사람의 생명과 직결된 안전 만큼은 좋은 게 좋은 것은 절대 아니다. 사고의 원인과 책임을 바라보는 눈은 냉정하고 객관적이어야 한다.

사업주의 안전의식은 어디로부터 오는가? 바로 철저하고도 가혹한 책임으로부터 온다. 왜냐하면 안전을 지켜내는 일은 귀찮고 번거롭고 부담스럽고 돈과 시간이 들어가고 다들 하기 싫어하는 일들이기 때문이다.

근로자도 예외일 수는 없다. 지키지 않으면 반드시 책임이 뒤따른다는 확실한 믿음과 신뢰만이 우리 사피엔스가 위험으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는 유일한 왕도다.

특히 제조업과는 달리 건설업은 설계부터 준공 이후 유지관리까지 다양한 이해 당사자가 관련돼 있는 만큼 발주자부터 근로자까지 권한에 비례하는 책임이 있어야 함은 너무나 당연한 논리다.

지난 2014년 세월호 참사가 있던 한해는 별다른 제도의 변화나 투자 없이도 산업재해가 현저히 줄었다는 사실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매우 크다. 바로 사회 모든 구성원이 안전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다함께 긴장의 고삐를 놓지 않았기 때문이다.

또 다른 사고발생 이유는 몰라서 못해 발생하는 경우다. 오늘날 일본이 수많은 재난 발생 환경에서도 수준 높은 안전을 할 수 있었던 이유는 재난을 겪을 때마다 철저히 반성하고 그것을 체계적인 교육으로 연계했기 때문이다.

물론 교육 대상은 남녀노소,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누구도 예외일 수는 없다. 안전교육은 자신의 생명과 재산을 스스로 지켜낼 수 있는 능력을 키우는 일이다.

일본 속담에 “벤또(도시락)와 안전은 자기가 챙긴다”는 말이 있지 않는가.

그러나 우리나라 안전교육의 현실은 어떠한가? 말 그대로 무늬만 안전교육이다. 체계적인 교육과정, 전문적인 강사, 실무 중심 교재 등 어느 하나 제대로 갖추고 있지 못하다.

사업장에서의 안전교육 실태는 더욱 심각하다. 근로자는 교육다운 교육을 받아 본 적이 별로 없고 강사는 경험 많고 노련한 근로자보다 특별히 뛰어난 것도 없다. 강사나 교육생이나 모두가 선배 어깨 너머로 배우고 귀동냥으로 들은 지식이 전부다.

그나마 대기업 사업장에 종사하는 근로자는 형편이 조금 나은 편이다. 재해의 70% 이상을 차지하고 있는 중소영세 소규모 사업장의 근로자는 인증샷을 찍고 교육이수 확인서명을 하기에도 바쁘다.

문재인 정부는 OECD 국가 중 불명예 1위를 차지하고 있는 우리나라의 산재사고, 교통사고, 자살사고로 인한 사망률을 절반으로 줄이기 위해 ‘국민생명 지키기 3대 프로젝트’를 선언하고 국민의 생명과 재산 지키기에 혼신의 힘을 다하고 있다.

늦었지만 정말 다행스러운 일이다. 하지만 좋은 것이 좋다는 ‘온정주의’ 극복과 형식에 그쳐 있는 ‘무늬만 안전교육’에 대한 과감한 변화와 혁신 없이는 그 효과를 기대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비록 사망률을 절반으로 줄였다 하더라도 그것은 사상누각에 불과할 것이다.

누구든 안전을 지키고 신뢰하면 절대 희생되지 않는다는 호모 사피엔스의 믿음이 다시는 깨지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기성호 dscki@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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