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전의 사각은 엉뚱한 곳에 숨어 있다. 서울 충정로역 7번 출구 앞 KT아현지사 일대는 말 그대로 아수라장이었다. 어지럽게 널부러진 전선 가닥이 바닥에 가득했다. 복구를 위한 KT 직원들, 교통통제를 하는 경찰에, 길을 오가는 시민들까지 혼잡은 극에 달했다. 어느 화재치고 대혼란을 빚지 않는 것이 없다 해도 이번 KT화재는 상식의 허를 찌르는 것이었다.

지난 24일 오전 11시경 발생된 화재는 같은날 저녁 9시 25분 완전 진화됐지만 화재로 인해 통신구 79m 가량이 소실됐다. 문제는 이 KT아현지사 통신구에 전화선 16만8000회선과 광케이블 220세트가 설치돼 있었기 때문이다.

이번 화재로 휴대전화가 무용지물이 되고 인터넷·IPTV와 KT망을 사용하는 결제 단말기도 먹통이 됐다. 단순 화재로 이만큼 큰 혼란과 후유증을 부른 경우도 드물다. 119신고가 되지 않아 귀중한 목숨을 구하지 못하는 사례도 발생했다. 이 이 화재는 통신장애로 인한 경제적 피해는 물론이요 안전과도 직결되는 비중 큰 사고였다.

서울시 주민등록 인구통계에 따르면 피해지역 거주자는 156만명이다. 주민수에 KT 무선시장 점유율인 30%를 대입하면 대략 47만명의 고객이 피해를 입은 것으로 계산된다. 가장 중요한 것은 병원은 물론 치안부분도 관리부재의 사각지대에 빠진 것이다.

예측하지 못한 것이어서 더 충격적이다. 만약에 이런 것이 단순한 화재와 통신장애가 아니라 테러라든가 사회 혼란을 끼칠 목적에 악용된 사례였다면 얼마나 끔찍한 결과를 낳았을까를 생각하면 눈앞이 아찔해진다. 보완대책을 철저하게 세워야 한다는 것은 당연한 주문이다.

지금 우리 사회를 우리가 슈퍼 네트워크 사회로 구분된다. 생활과 삶의 모든 것이 네트워크로 연결돼 있는 사회인데 이것이 화재로 마비되는 순간을 예측치 못한 것은 엄청난 실수다. 국가시설 같은 경우 국가보안목적이 지정돼 있다. 그래서 이미 국가 차원에서 방호가 철저하게 이뤄지고 있는 것이다, 이번 KT화재 역시 스프링클러 설치가 문제된다. 화재를 당하고 나서의 생각인데 이것이 이만큼 중요한 시설이라는 인식이 있었나 하는 측면에서 따져 볼 것도 있다.

이번 사고는 일단 화재로부터 시발했다. 이런 중요시설이 화재에 거의 무방비상태로 노출돼 있었다니 말이 되는가. 설마가 사람 잡는다지만 이번은 과했다. 그러고 보니 이번 KT화재는 일종의 재난으로 보아야 마땅하다. IT강국의 이미지도 화재 한건으로 엉망이 됐다.

이 역시 사람의 실수라든가 부주의 또 고의로 일어날 수 있는 그런 재난이라면 우리는 또 안전불감증을 말하지 않을 수 없다. 예방과 수습 그 모든 것에 더는 사각지대가 발생하지 않도록 이번 사고를 반면교사로 삼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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