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인천광역시 교육감이 관내 인현동 화재참사 위령비를 참배하고 희생자들을 추모하는 모습이 뉴스를 탔다.

인현동 화재는 1999년 10월 30일 인천의 중·고등학생 등 57명을 숨지게 하고 81명을 다치게 한 끔찍스러운 사건이었다. 그러고 보니 벌써 19년이 지났지만  잊혀지지도 않고 잊어서도 안될 큰 사건이다.

그날 오후 6시 55분 인현동 지하 1층, 지상 4층 상가건물 지하에서 발생한 불은 불과 35분만에 130여명의 사상자를 낸 대형 참사로 번졌다. 당시 화재가 발생한 지하에는 학교 축제시기를 맞아 인근 중ㆍ고등학생들이 가득 모여 있었다.

화재는 엉뚱하게 지하 내부 공사장에서 시작됐다. 당시 내부 공사장에는 실내 페인트작업 후 남은 시너 등 인화성 물질이 널려 있었고 여기에 깨진 전구에서 튄 불씨가 옮겨 붙어 큰불이 됐다.

공사와 관계없던 학생들은 이럴 줄 누가 예상이나 했겠는가. 건물의 내부 구조물은 스티로폼과 석고 등 인화성 유독물질로 시공돼 있어 연기와 불은 계단을 타고 순식간에 건물 전체로 번졌다.

이상한 낌새를 눈치 챈 학생들이 대피하려 했지만 탈출구가 없었다. 비상구가 없었던 것이다. 여기서 억울한 것은 이 건물이 건축법상 별도의 비상계단이 필요하지 않은 것으로 돼 있었다는 것이다.

해당 건물에는 폭 1.2m 남짓한 출입구가 하나 있었을 뿐이다. 더욱이 불법영업을 숨기기 위해 유리창 등도 모두 막아 놓고 있었다. 신속한 대피는커녕 탈출불가 상태에 빠졌다.

스프링클러는 있었다. 그러나 공사에 방해가 된다며 모두 작동불가로 만들었다.

해당 장소는 호프집으로 운영하고 있었지만 무허가ㆍ불법으로 영업소 폐쇄명령을 받은 상태였다.

더 안타까운 것은 영업제재 상태를 감추기 위해 하나뿐인 출입문을 걸어 잠그고 있었다. 무슨 수로 대피를 할 수 있단 말인가.

이같은 상태가 빚어진데는 경찰과 공무원 등이 연루된 정황도 포착됐다. 관련 공무원과 경찰 등이 눈감아 준데는 정기적 상납이 작용했다.

청소년이 호프집에 있었다는 사실도 큰 사건이 아닌가. 지금 같으면 상상조차 어려운 극악의 상황이다. 안전불감증과 부정비리가 결탁했으니 대참사를 피할 길이 없었던 것이다.

이제와 돌이켜보니 이 사건은 뉴스에서 빠지거나 축소됐음을 엿볼 수 있다. 가급적 치부를 가리려는 시도가 있었을 것으로 짐작된다. 그러기에 이 참사는 다른 사건에 비해 덜 알려진 편에 속한다. 이런 비극을 다시 겪지 않으려면 아픈 사고를 잊지 말고 기억해야 한다. 참사 트라우마를 치유하면서 안전에의 동경심을 심어야 하는 것이다.

우리는 ‘참사공화국’이란 오명을 안고 있는 대한민국에 산다.

1970년 323명이 목숨을 잃은 것으로 알려진 남영호 사건부터 1999년 경기 화성시 씨랜드 화재, 2014년 전남 장성군 요양병원 참사 등 알듯 모를듯한 대형재난·사고들이 과거란 기억에 담겨 있다.

이 참사들은 한꺼번에 수많은 생명을 앗아갔다는 공통점 외에는 제각각 원인과 배경, 사건 수습과정 등이 모두 다르다.

하지만 남영호 사건이건 안전매뉴얼 부재로 100여명의 사망자를 발생시킨 2003년 대구지하철 화재 사건, 하청과 재하청으로 이어지며 안전을 외주화한 결과로 발생한 2013년 전남 여수국가산업단지 대림산업 폭발 참사 등은 이를 일으킨 구조적인 원인이 안전불감증에 있다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지금도 많은 사람들이 기억하고 있는 성수대교 붕괴사건은 성급한 성과주의와 관리부실이 낳은 비극으로 기록돼 있다.

1994년 10월 21일 오전 7시 서울시 성동구 성수동과 강남구 압구정동을 연결하는 성수대교의 상부 트러스 48m가 붕괴되며 50여명의 사상자를 냈다.

기존 한강 다리와 달리 미관을 살리기 위해 처음으로 거버 트러스(Gerber Truss)라는 당시로서는 새로운 공법을 택한 것인데 신공법으로 만들어진 성수대교는 15년만에 무너졌다. 직접적인 사고 원인은 부실시공 탓으로 규정됐다.

성수대교 붕괴사건이 일어난 지 1년이 채 되지 않아 삼풍백화점 붕괴사건이 또 일어났다. 고객이 많이 몰리는 백화점 저녁시간대였기 때문에 피해는 더 컸다.

사망 501명, 실종 6명, 부상 937명으로 6·25전쟁 이후 가장 큰 인적 피해를 낸 대참사였다. 사고에 대한 안이한 태도가 낳은 재앙이었다.

이제 결론을 내리자. 우리는 언제 어디서 어떤 재난을 만날지 모른다. 우리 주변은 온통 위험투성이다. 적어도 상식이 통하는 사회에 살고 있다는 우리가 지난 시절 안전이란 것에 그토록 무관심했을뿐 아니라 아주 무지몽매한 지경에 처해 있었다는 사실은 지금에 와 부끄럽기 그지 없다.

일부러 지난날을 들쑤셔 마음의 상처를 덧나게 할 필요야 있을까마는 그래도 이제는 잊고 있을 법한 그 인재(人災)의 역사가 이 시점의 반면교사가 될 수 있기에 다시금 그 악몽의 기록을 되새기곤 하는 것이다.

국민들이 불안에 떨며 전전긍긍하고 있다면 정부가 나서서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더 두고 볼일이지만 정부가 어떻게 국민안전에 대한 신뢰의 뿌리를 내릴지 기대 반 걱정 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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