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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ME 오피니언 칼럼승인 2018.10.18 08:58 | 수정 2018.10.18 08:58
부주의와 안전수칙의 딜레마

지금은 확실한 정보화시대다. 간단히 휴대폰으로 오늘의 안전상황을 검색해 보자. 주요 재난안전관리상황은 선박사고, 교통사고, 각종 화재·질식사고, 국내지진 등으로 분류돼 세부상황을 알려주고 있다. 이어 재난안전예방활동 등도 함께 전해 준다.

예컨대 국토부가 대형공사장 불시 안전점검을 확대·강화한다든가 복지부에서 일본 풍진 유행 때문에 여행 전 예방접종을 당부한다는 식이다. 여기를 들여다 보면 정말 알아서 좋을 정보들이 다 나와 있다.

최근 일본에서 풍진 유행이 지속되고 있어 여행계획이 있는 경우 반드시 예방접종을 해야겠지만 면역력이 약한 임신부는 여행을 자제하는 편이 나을 것이다.

해외여행 중에 손씻기, 기침예절 지키기 등 개인위생수칙 준수도 중요하다. 매일 알려 주는 정보들이다.

이 안전정보 속에 들어가 보면 재미있는 것들도 많다. 타산지석이라 할 것이다.

알다시피 우리 생활에서 재난과 안전은 모순(矛盾)의 논리와 부합한다. 그 무엇으로 막으려 하건 모두 다 뚫을 수 있는 창(矛)이 있다고 치자. 또 그 무슨 창이라도 다 막아낼 수 있는 방패(盾}가 있다고 하자. 이 창으로 그 방패를 찔러본다면 어찌 될까. 이것이 모순이다.

그 어떤 노력에도 우리 삶의 현장에선 사고가 발생한다. 그러나 정말 인력으로는 불감당일 수밖에 없을 것 같은 재난과 사고도 잘하면 예방이 가능하다는 점에서 우리는 모순 속의 가능성을 발견한다. 

안전을 지킨다는 것은 참으로 힘든 일이기도 하나 그 만큼 보람된 것이기도 하다. 애로와 보람이 공존하는 것이다.

이제 본격적 단풍놀이 계절에 접어 들었다. 관광버스가 줄을 잇는 행락의 계절이기도 하다. 현행 관광진흥법 시행규칙 등에 의하면 놀이시설이나 놀이기구의 안전성 검사 사무를 수행하기 위해서는 기계·전기 또는 기계안전분야의 기술사 또는 공학박사 1명 이상을 포함한 기계분야 자격자 4명, 전기분야 자격자 2명 및 산업안전분야 자격자 1명 등 총 7명 이상의 기술인력을 채용토록 하고 있다.

그런데 현행 위탁업체가 이런 법정 요건을 충족하지 못한 채 안전성 검사를 하고 있다는 소리도 들린다. 과거에도 감사원의 ‘국가사무 민간위탁업무 관리실태’ 감사 결과 등에서 지적된 것들이다. 유원시설이 최소한의 기술인력을 채용해 지정요건에 미달한 채 운영되고 있다면 결국은 행락객의 안전부분이 그만큼 깎이는 결과가 될 것이다.

이래도 되는 것일까. 유원시설은 어린이들이 선호하는 곳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더더욱 이 부분의 허점을 간과해선 안될 것이다.

교육부문이라면 세계 정상의 수준을 인정받고 있는 한국이 놀랍게도 어린이 안전에 있어서는 바닥을 기고 있다는 사실이 참으로 아이러니컬하다.

어린이들을 위협하는 성폭력, 유괴, 납치 등의 범죄에는 학부모들이 앙앙불락 하면서도 어린이놀이터 같은 중요한 시설의 안전에는 전혀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는 것도 이해가 잘 안가는 대목이다.

안전을 무시하고도 무사할 수 있다는 생각은 이제 모두 접어야 한다. 안전을 돌아보지 않는다면 심판이 따를 수도 있다.

성서에 ‘심판의 날’이 나온다. 구약과 신약의 선지자들이 장차 최후의 심판, 그 심판의 날이 올 것이라고 말한다. 사람들은 그 최후의 심판이 언제일지 알고 싶어 한다. 그러나 누가 알 수 있으랴.

최후의 심판은 옛부터 화가들이 즐겨 다룬 소재다. 가장 유명한 작품은 바티칸에 있는 미켈란젤로의 ‘최후의 심판’이다. 시스티나 천장화로 1541년에 완성된 이 그림은 가로 세로 14.5m와 13.5m나 되는 대작이다.

이 심판의 날은 종교적인 의미도 있지만 오래 전부터 일반 용어로 쓰이고 있다. ‘알 수 없는 미래’라는 뜻이기도 하다.

최후의 심판의 날이 오면 우리는 어떻게 될까. 무서운 불길에 휩싸이는 것은 아닐까. 세상에서 제일 무서운 것이 불이다. 불이 아니라 다른 재난일 수도 있다.

이런 심판이 아니더라도 안전을 외면하면 사고가 따라 붙는다.

작은 부주의라도 안전에 관한 것이라면 ‘부주의’로 인해 발생한 결과는 모두가 큰 피해로 연결된다. 그 부주의의 하나로 담배꽁초를 아무 곳에나 내던지는 것도 있다.

사람들이 불은 무서워하면서도 담뱃불은 불로 보지 않는 것도 이해가 안가는 부분 아닌가. 이 불씨 하나가 산천을 태운다.

별것 아닌 자질구레한 주의같지만 주위의 위험요인을 찾아보는 것은 사람의 목숨을 구하는 중요한 조치다. 이것이 기본적인 안전수칙이다.

안전수칙은 어려운 조건을 요구하지 않는다. 그러면서도 반드시 지켜야 하는 것이 안전수칙이다. 이를 지키지 않았을 때 사고건 심판이건 나쁜 결과가 찾아온다.

안전수칙을 지키는 것이 습관화돼야 한다. 그래야 안전문화가 정착되고 안전한 나라가 되지 않겠는가.

최명우 주필  myungwu@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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