흡혈귀 드라큘라 소재의 영화가 한동안 인기를 끌었었다. 홍콩영화에서 강시 시리즈가 강세를 보이자 국내 영화계까지 여파가 미쳤었다.

중국 전설에서 유래한 강시는 죽었으면서도 마치 살아 있는 것처럼 움직이는 시체를 가리킨다. 한밤중에 돌아다니다가 낮에는 관 속으로 돌아가는데 얼굴이나 몸을 봐도 살아 있는 인간과 별 차이가 없다.

강시영화는 1900년대에 들어서면서 거의 사라지는 듯했는데 이의 다른 모습으로 등장해 인기몰이를 한 것이 좀비(zombie)물이라 할 수 있다. 

‘살아 있는 시체들의 밤’ 등 좀비 영화의 대부로 불리는 미국의 조지 로메로 감독은 “현존하는 모든 재난이 곧 좀비”라면서 “좀비 영화는 사람들이 이 재난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는 상황을 그려낸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좀비의 등장과 유행은 인간의 탐욕과 몰락에 대한 역설적 경고일 수도 있겠다.

좀비는 원래 서아프리카 지역의 부두교(voodoo cult)에서 뱀신(snake-god)을 가리키는 말로 콩고어로 신을 뜻하는 ‘nzambi’에서 나온 말이었다. 그것이 일부 아프리카·카리브해 지역에서 ‘되살아난 시체’를 뜻하는 말이 됐고 지금은 비유적으로 ‘반쯤 죽은 것 같은 무기력한 사람’을 일컫는 말로 쓰이고 있다.

사람을 물면 물린 사람도 괴물이 되는 좀비는 1968년 조지 로메로 감독의 영화를 통해 특징적 캐릭터로 정착된 것이다. 아이티의 부두교 흑마술에서 좀비가 기원했다는 설도 있다. 일단의 흑마술사들이 사망 상태인 것처럼 보이게 하는 약을 사람들에게 먹여 죽였다가 다른 약으로 나중에 되살려 환각상태에 빠진 이들을 농장의 노예로 부렸다는 이야기가 그것이다.

‘좀비는 삶과 죽음의 권리 자체를 박탈당한 채 영원한 노예가 돼버린 자들의 이름이다’라는 얘기가 여기서 나온 것이다. 그 좀비가 한국 인터넷에서 부정적인 의미로 인기를 누리는 단어가 됐다.

좀비는 기본적으로 떼를 형성하고 무한 증식하지만 무뇌(無腦)상태로 존재한다. 온라인에서는 거침없는 내용의 게시물을 올리는 전사이지만 막상 현실의 오프라인에서는 전혀 힘을 쓰지 못하는 소심한 사람들을 이에 비유하기도 한다. 최근 들어 좀비는 다양한 경우에 걸쳐 ‘무기력의 극치에 이르렀다’는 의미에서 여러 가지 조어로 재생산되고 있다.

그 중의 하나가 스마트폰 좀비(smartphone zombie)다. 스마트폰 화면을 들여다보느라 길거리에서 고개를 숙이고 걷는 사람을 넋 빠진 시체 걸음걸이에 빗대어 일컫는 말이다.

‘스마트폰(smartphone)’과 ‘좀비(zombie)’를 합성한 것인데 이를 ‘스몸비(smombie)’라고 한다. 요즘 한창 뜨거운 유행어다.

스몸비는 2015년 독일에서 처음 등장해 스마트폰에 지나치게 매인 세태를 풍자했다. 우리에게도 이 스몸비가 큰 문제가 되고 있다. 스마트폰 화면에 눈길을 빼앗긴 탓에 넋 없이 길을 걷다 자동차에 치이는 사고가 연발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이들이 단순히 음악을 듣거나 통화를 하는 것이 아니라 스마트폰을 보며 조작을 하다 교통사고를 사고를 내는 것이다. 이처럼 사고가 잦아지자 보행 중에는 스마트폰 화면이 자동으로 잠기는 앱도 개발됐지만 이용자가 많은 것 같지가 않다.

서울시와 경찰청이 나서서 시민들이 많이 오가는 시청, 연세대, 홍익대, 강남역, 잠실역 길바닥에 걸어가며 스마트폰을 보면 위험하다는 내용을 담은 교통안전표지를 설치한 것이 재작년이다.

서울시가 이번에는 스마트폰 보행자 교통사고를 예방하기 위한 대책을 새로이 내놨다. 이른바 스마트폰을 사용하며 보행하는 ‘스몸비’들의 교통사고를 예방하기 위해 바닥신호등과 보도 부착물을 설치한다는 것이다. 스몸비 교통사고가 급증하는 추세를 그대로 두고 볼 수 없기 때문이다.

교통사고사망자 절반 줄이기 종합대책을 통해 사망자수가 줄어 들고 있지만 그럼에도 이 스몸비 때문에 보행사망자 비중은 줄지 않고 있는 실정이다. 하지만 무엇보다 휴대전화 사용자 스스로 안전의식을 갖는 것이 사고예방의 기본이다.

좀비가 되면서까지 스미트폰의 노예가 돼야 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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