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양은 아직 깊은 슬픔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제천도 그렇다.

아픔엔 세월이 약이라고 하지만 이런 경우는 해당되지 않는다.

아프더라도 오히려 잊어서 안될 부분이다.구사일생으로 살아남은 생존자들은 “세상이 까맣고 고함만 들렸다”고 증언했다. 이들도 후유증으로 심한 고통을 받고 있다.

후진국일수록 안전과 거리가 먼 까닭은 무엇일까. 늘 그랬듯이 안전은 비용문제에 발목이 잡혀있다.

우리도 그런 양상이다. 아무리 경제가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고 하나 안전에 있어서는 아직 답보상태다.

세종병원 화재현장에서 우리는 이를 확인할 수 있었다. 급박하게 사용된 피난 미끄럼대는 꺼내놓고 보니 생산된 지 11년이 넘은 구닥다리였다.

이 구조대 비치는 경비가 적게 드는 장점이 있지만 세종병원처럼 거동이 불편한 사람들이 집중돼 있는 곳이라면 돈이 더 들더라도 완강기식 피난기구를 설치하는 것이 옳았다.

선진국이라면 건강 취약자들의 다중이용시설인 병원시설 같은 경우 건물 내 일정 장소에 불과 연기에서 완전히 차단되는 방화구획을 구축하고 환자복까지 난연섬유 사용을 의무화하고 있다.

조사해 보면 알겠지만 화재에 무방비로 노출된 곳이 어찌 세종병원뿐이겠는가. 요행히 불이 나지 않았을 뿐 제2·3의 세종병원이 곳곳에 널린 셈이다.

세종병원은 스프링클러가 작동하지 않았다. 규정상 설치의무가 없는 곳이라 한다. 그러나 이 때문에 피해가 대단히 컸다.

결과론으로 보면 시설의 규모보다 이용자수를 감안했어야 할 시설이다. 규정의 허점이 호시탐탐 빈틈을 노리던 화마에 그대로 노출된 것이다.

그래서 나온 소리가 바닥 면적이나 건물층수 등을 따져 안전장치 의무설치 여부를 지정하는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는 것이었다.

돌이켜 보면 우리는 큰 사고가 날 때마다 규정을 강화하고 대책을 내놓지만 사고는 늘 이를 앞질렀다. 대책이라는 것이 늘 사고의 꽁무니를 쫓기에 바빴다고 할까.

안전은 말로 하는 것이 아니다. 이제부터라도 달라져야 한다. 그런데 그 달라지는 게 문제다.

말로만 떠들어서는 결코 성과를 기대할 수 없다. 근본에서부터 바꾸지 않으면 안타까운 희생은 또 되풀이될 것이다. 이렇게 자주 또 크게 당하고 보니 의기소침해진다.

불안은 더 가중될 수밖에 없다. 국민들의 바람은 당국에서 어떻게 뾰족한 수를 내봐 달라고 하는 것이다.

당국도 답답하기는 마찬가지일 것이다. 이럴 때 필요한 것이 국민적 합의와 선진의 지혜다. 국가는 유효한 선진국 우수사례들을 벤치마킹해 내놓고 국민은 이에 적극 호응해야 한다.

시간이 걸리더라도 꾸준한 개선과 의식개혁을 해야 한다.

안전문화를 정착시켜야 한다는 것이 막연한 느낌을 주지만 이것이야말로 안전으로 가는 확실한 길이다.

안전문화 정착을 위한 안전우선문화 원년을 다시 선포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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