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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ME 오피니언 칼럼승인 2017.12.28 15:53 | 수정 2017.12.28 15:53
분노의 역류

지난 12월 21일 발생한 제천 복합상가 화재참사는 인명구조에 허점을 드러내 많은 아쉬움을 남기고 있다.

2층 사우나 유리창을 깨뜨릴 수 있었다면 어떠했을까. 2층 비상구 앞에 창고를 설치하도록 한 건축설계는 무엇이며 방화문·스프링클러는 왜 제대로 작동하지 않은 것일까. 참으로 안타까운 사연들이 겹쳐 있다.

특히 당시 출동한 소방대가 화재 초기에 2층 여탕 유리창을 깨지 않은 이유를 두고 말이 많다. 이때 유리창만 개방될 수 있었다면 탈출은 쉬운 것이어서 더더욱 아쉬운 것이다.

그러나 이에 대해 백드래프트(Backdraft·역류)현상 때문에 유리창을 뚫지 않았다는 이유가 제시돼 논란이 일고 있다.

유가족들이 초기 대응의 잘못을 추궁하자 소방당국이 교과서에서 나오는 백드래프트 우려를 답으로 내놓은 것이라 풀이할 수도 있다. 현장이 아수라장인데 4명의 인력이 유리창을 깨고 할 정신이 없었을 것으로 이해할 수도 있다. 

이 백드래프트가 요즘 인구에 회자되고 있다. 백드래프트 현상은 화재 발생으로 산소가 부족한 실내에 갑자기 공기가 유입될 때 화염이 밖으로 분출되는 현상을 말한다.

화재현장에서는 백드래프트를 충분히 대비해야 하지만 제천 화재의 상황을 보면 백드래프트 우려 때문에 유리창을 깨지 않았다는 이유는 궁색해 보인다. 차라리 당시 지휘관 입장에서는 2층 사우나탕에 많은 인원이 몰려 있다는 사실을 그대로 인지할 수 없는 상황일 수도 있다. 당장 3, 4층 유리벽에 매달려 있는 2명을 구조하고 1층에서 치솟고 있는 불을 꺼야 한다는 생각뿐이었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화재와 관련 1977년 국내에 개봉된 영화 ‘타워링(원제 The Towering Inferno)’은 초고층건물의 화재를 다룬 파이어 블록버스터로 많은 관객을 모았다, 그로부터 한참 뒤 1991년 공개된 ‘분노의 역류(원제 Backdraft)’는 그야말로 목숨을 걸고 불과 싸우는 소방관의 이야기를 다룬 본격 화재영화로 사람들의 감동을 이끌어 냈다.

헐리웃 영화라면 경찰관들이 주인공으로 나서는 게 상례지만 더러 소방관의 진한 감동스토리가 선을 보이기도 한다.

‘분노의 역류’는 소방관의 고충과 동료애를 그리고 있지만 원제목처럼 일반에게는 좀 생소한 화재의 역류(Backdraft)현상을 다뤄 깊은 인상을 남겼다.

소방관 살상자라는 닉네임의 백드래프트는 밀폐된 공간에서 화재가 일어났을 때 주변의 산소를 모두 태우고 잠복하고 있다가 다시 산소가 공급되면 순간적으로 폭발하기에 이렇게 불리운다. 이 영화에서는 소방관들이 도끼를 들고 문을 부수는 순간 순식간에 산소가 빨려 들어가면서 큰 폭발을 일으키는 바로 그 장면이다.

백드래프트는 화염이 폭풍을 동반하면서 산소가 유입된 입구로 갑자기 분출되기 때문에 폭발력 또한 매우 강하다.

주로 지하실이나 폐쇄된 공간에서 화재가 발생한 경우에는 산소가 부족해지면서 불꽃이 보이지 않고 타들어가는 훈소상태에 접어 들며 일산화탄소와 탄화된 입자, 연기와 부유물을 포함한 가스가 공간에 축적되게 된다. 이런 조건에서 건물 내부로 진입하기 위해 문을 열거나 창문을 부수게 되면 산소가 갑자기 공급되고 백드래프트 현상이 발생한다.

백드래프트의 징후를 관찰할 수 있는 특징은 균열된 틈이나 작은 구멍을 통해 건물 안으로 연기가 빨려 들어가거나 화염은 보이지 않아도 창문이나 문이 뜨거운 경우, 유리창의 안쪽으로 타르와 유사한 기름성분의 물질이 흘러 내리는 경우, 창문을 통해 봤을 때 건물 내에서 연기가 소용돌이 치고 있는 경우 등으로 설명된다.

또 건물의 내부에서 관찰할 수 있는 징후로는 압력의 차이로 인해 공기가 내부로 빨려 들어가는 듯한 특이한 소리가 나는가 하면 연기가 건물 내부에서 소용돌이치거나 맴도는 경우를 들 수 있다.

이 백드래프트현상은 국내에서도 나타나 보인 적이 있다.

지난 2012년 5월 5일 부산에서 발생한 시크노래방 화재는 불이 크지 않았음에도 9명이 사망하고 25명이 중경상을 입는 대참사로 발전했다.

미로처럼 복잡한 실내구조는 비상탈출을 불가능케 했으며 고급 내장재가 타면서 유독가스를 내뿜어 그야말로 노래방이 아니라 창문 하나 없는 죽음의 가스실과 다름없었다. 게다가 업주측이 초기 진화에 미숙했고 소방안전수칙도 무시한 정황이 드러났다. 고급스럽고 멋진 인테리어는 탈 때 더 많은 유독가스를 발생시켰을 뿐 안전과는 완전 역행할 뿐이었다.

불이 나자 노래주점 주인과 종업원이 소화기로 불을 끄려고 연기가 새어 나오는 방의 문을 열었다고 한다. 그러자 갑자 여기 불이 번지면서 시커먼 연기가 확 뿜어져 나오는 바람에 초기진화에 실패했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당시 소방본부측은 “방문을 여는 순간 공기가 공급돼 급속히 연소가 확대됐을 것”이라고 했다. 일종의 백드래프트라는 추정이다.

이제 새해를 맞았는데 우리 주변엔 마치 영화 같은 현실이 준비돼 있다. 그래서 이를 사전에 막는 예방조치에 우리는 최선을 다해야 한다.

비단 화재뿐이 아니다. 그 어떤 형태의 것이든 우리의 안전을 위협하는 것들은 상존한다. 그럼에도 우리가 보다 안전하게, 그리고 안심 속에서 생활을 향유하려면 우리의 예방문화부터 정착시켜야 한다.

예방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깨닫지 못한다면 우리는 결코 선진국으로 갈 수 없다.

안전에 대해서는 여전히 부끄러운 우리다.

최명우 주필  myungwu@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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