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충호 안전보건공단 서울지역본부장

올 1월 벽두 서울 한복판에 자리한 건설공사현장에서 붕괴사고로 4명의 사상자가 발생해 정치뉴스가 독점하던 언론매체의 상당부분을 얻어내는 위력(?)을 과시했다.

30년이 넘은 11층짜리 호텔을 철거하고 그 자리에 현대식 관광호텔을 짓기 위해 구 호텔을 해체하는 과정에서 슬라브 상판이 무너져 내리면서 살수작업을 하던 일용직 근로자 2명이 매몰돼 목숨을 잃고 또다른 근로자 2명은 크게 다쳐 병원에 입원한 사고다.

사고는 지상 3층까지 해체작업을 끝내고 2층과 1층 사이 벽체를 중장비(굴삭기)로 압쇄해 해체작업을 하던 중 중장비와 쌓인 철거 잔재물로 늘어난 하중을 1층 콘크리트 슬라브가 견디지 못해 무너져 내리면서 발생했다.

또 붕괴하중이 지하 1, 2층에 순차적으로 작용하면서 지하 3층까지 연쇄적으로 붕괴한 것이다.

복잡한 도심에 있는 건축구조물 해체의 경우 폭파와 같은 손쉬운 해체공법 적용이 어렵다.

뿐만 아니라 철거 대상 건축물은 구조물의 강도가 약해지고 균열 등이 발생해 외력이나 허용하중 이상이 가해질 경우 사고 위험이 증가한다.

그래서 해체공사의 경우 시공 전과정에서 안전이 매우 중요하다.

사고가 발생한 호텔철거공사의 경우도 이러한 측면에서 예외가 아니었으나 사전 안전성 검토나 시공 중 안전관리가 충분하지 않았음이 드러났다.

철거에 사용된 굴삭기는 건축물의 노후도를 고려해 경량의 14톤을 사용키로 했으나 실제 현장에는 공사를 손쉽게 하기 위해 21톤급이 투입됐다.

굴삭기의 작업 위치도 기둥이나 벽체 상부와 같이 수직하중을 견딜 수 있는 곳이 아닌 슬라브에 위치했고 철거된 철근 콘크리트 잔재물을 실시간 반출하지 않고 슬라브 바닥에 적치하고 작업을 진행함으로써 과도한 하중이 그대로 슬라브에 작용했다.

지하층 구간의 경우 하중을 견딜 수 있도록 고강도 버팀목(잭서포트)를 설치하라는 전문기관의 조언이 있었음에도 이를 무시하고 해체작업을 강행했다.

이렇게 무리하게 공사를 진행한 이면에는 공사비와 공사기간에 대한 문제가 있다.

공사비 산출내역에 장비 사용료와 철거된 잔재물 처리비 이외에 안전가시설물 설치비용과 안전관리 인건비 등 관련 내역을 삭제하고 특약사항에 포함하는 계약을 했다.

계약된 공사기간도 이해하기 어려운 점이 있다. 일반적으로 적용되는 표준 해체공사기준에 따라 본 공사의 공기를 따져보면 약 73일 정도가 필요하다.

그러나 계약서상 공기는 41일이었고 실제로 사고 당일은 계약공사기한 대비 40여일이 지연돼 지체상금을 물을 수 있는 상황이었다. 당초 철거공사가 완료돼야 대금을 지급받을 수 있도록 하도급계약이 돼 허가사항을 무시하고 무리하게 공사를 진행하는 단초를 제공했다.

인력의 전문성 측면에서도 문제가 드러났다. 도심지내 기존건물 철거공사는 착공과 동시에 진행하는 위험성이 높은 공사임에도 전체 공사비는 49억원으로 안전관리자 선임의무 대상에서 제외됐다.

뿐만 아니라 영세한 해체공사 전문건설업체와 인력공급업체를 통해 채용된 일용직 근로자가 투입됐다.

이같은 건설현장의 안전문제가 호텔해체공사 붕괴사고가 발생한 현장이나 건설사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는데 심각성이 있다.

건설사는 최저가 입찰방식에 의거 수주한 건설공사를 공기 내에 준공해 발주처에 납품하기 위해서 공사 현장소장에게 공기와 원가라는 두장의 카드를 손에 들려 현장으로 보낸다.

수주한 건설공사의 공사계획서를 작성하거나 협력업체 공사계획서를 받아 검토함에 있어 공기를 맞추고 이윤을 창출해야 하는 압박감은 결국 협력업체의 도급원가 인하와 안전관리 등에 써야 할 비용의 절감(?)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최근 10여년간 건설현장 사망자수가 줄어 들지 않고 최근에는 오히려 증가하는 추세를 보이고 있다.

우리나라 사고사망자 비율은 OECD 회원국 중에 하위권이며 미국, 일본, 영국 등에 비해 3~7배가 높다.

산업재해, 특히 건설업의 사망자수가 줄지 않고 전산업 사망자수의 절반을 차지하는 근본적인 원인는 6만여개에 달하는 건설회사가 안전을 공기와 원가라는 그늘에 두고 사고가 없길 바라는 요행의 경영방식에 기인한다.

기업은 이윤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안전을 도외시한 공기와 원가 챙기기가 경영상 이익이라고 보기 어렵고 오히려 현대 기업을 경영함에 있어 안전문제를 적정하게 대응하지 못하면 기업은 위기를 맞을 수 있다.

대형사고나 산업재해가 가져다 주는 기업의 손실은 단순히 금전적인 손해를 넘어 기업 브랜드 가치 하락과 입찰기회의 상실 등 손실이 엄청나기 때문이다. 안전은 경제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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