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사는 곳에 불이 있다. 불 있는 곳에 화재가 있고 화재가 대형재난을 불러 온다. 이제 겨울이 눈앞에 있고 겨울은 불의 계절이다. 화재에 특히 주의할 때인 것이다.

그러나 불에 대한 인식은 여전히 불감증이다. 불(火)에 대한 불감증이 아니라 그냥 불(不)감증이다.

‘불구경 보다 재미있는 것이 없다’는 속어까지 있듯이 내 발등의 불 아니면 급할 게 없다. 그래서 우리는 자주 불의 재난을 겪는다. 

사람들의 오래된 기억 중에 아직도 지워지지 않는 최악의 화재사건은 1971년 12월 25일 크리스마스 날 아침에 일어난 대연각 호텔의 불이다. 당시 대연각은 지은 지 얼마 안된 지상 22층 건물로 고층건물이 채 100개가 안되던 때의 위풍당당한 빌딩이었다. 이 호텔의 화재는 전에 경험해 보지 못한 대형건물화재여서 진화에만 10시간이 걸렸고 구조작업은 더더욱 난항을 겪었다.

아니 구조작업이 불가능했던 것이다. 고층화재에 대한 대책이 없었기 때문이다.

침대 매트리스를 안고 뛰어 내리다 죽고 구조헬기에 매달려 가다 떨어져 죽고 꽃잎처럼 휘날려 떨어져 죽고 질식하고 타죽어서 모두 163명이 사망했으며 근 70명이 부상했다. 호텔투숙객 200여명, 종업원 70명 중에서 이처럼 큰 인명피해를 낸 것은 구조작업에 거의 손을 쓸 수가 없었다는 반증이다.

이 참사는 하루 종일 TV로 생방송됐기에 전 국민이 가슴을 태웠던 사건이다.

세월호 참사의 전편과 흡사하다고나 할 수 있겠다.

이때 꼭 필요한 것이 고층에 대응할 수 있는 고가사다리차였다. 그것이 없어서 그토록 엄청난 인명피해를 가져 왔으며 그것이 반면교사가 돼 이후 소방 고가사다리차가 속속 구입됐다. 차마다 크기나 기능은 조금씩 다르지만 20층 정도는 거뜬하다.

현 정부의 안전정책을 살펴보면 한눈에 ‘안전격상’을 읽을 수 있다. 안전을 최고의 가치로 인정해 재해없는 나라를 만들자고 하고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안전불감증은 여전하고 크고 작은 사고가 꼬리를 물고 있다. 무엇이 문제인가.

대책은 좋지만 이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일반층에 문제가 있다. 저변의 안전문화가 자리를 잡지 못하고 있다.

이럴 때 인용할 만한 고사성어로 수주대토(守株待兎)가 있다. ‘그루터기를 지켜 토끼를 기다린다’는 뜻으로 고지식하고 융통성이 없어 구습(舊習)과 전례(前例)만 고집함을 뜻한다.

정부는 국민안전을 위한 새로운 발상을 당사자인 국민으로부터 널리 구할 수 있어야겠다.

항상 위험이 뒤따르는 작업장의 근로자들은 보호대와 안전모를 장착하지만 안전모를 썼다고 해서 반드시 안전이 보장되는 것도 아니고 자칫 목숨까지 잃을 수 있는 중대재해 앞에서는 스스로를 지키기가 어려운 상황이다.

각종 사업장들은 그야말로 위험이 상존하므로 ‘위험한 일자리’로 규정돼 있지만 예고 없이 덮치는 각종 대형사고 앞에서는 국민들도 속수무책이다.

그러나 이 위험을 안전으로 바꾸는 것이 바로 사람의 지혜다.

위험요소를 스스로 찾아서 제거하려는 노력이 위험한 일자리를 안전한 일자리로 바꿔줄 수 있으며 학교 가는 어린이를 뒤따르며 보살피는 어머니의 지극정성 같은 안전의식이 국민들을 위험으로부터 지켜 줄 수 있다.

일례로 한 지지체의 안전문화운동을 지켜보자.

경기도 용인시는 지진, 풍수해, 화재 등 각종 재난을 체험하고 대피하는 방법을 배우는 대규모 안전문화 체험 행사를 펼친다. 언제 발생할지 모른다는 전제하에 지진 대피법을 비롯해 풍수해 대비, 연기미로 탈출, 화재진압 등 각종 재난시 신속한 대응법을 훈련하고 심폐소생술 등 이웃의 생명을 보호하는 응급처치법도 배운다.

어린이는 물론 청소년, 여성, 노인들까지 위험에 처했을 때 신속히 대처할 수 있는 능력을 기르기 위해 마련한 것이다. 불이 난 지하철에서 대피하고, 전복하는 선박에서 탈출하며, 항공기에서 대피하는 방법을 배울 수 있다. 다양한 비바람을 맞아 보기도 하고 연기에 휩싸인 집에서 옥상으로 대피해 완강기를 타고 탈출하는 훈련을 해볼 수도 있다.

안전은 늘 깨어 있어야 하며 위기에 대응할 수 있도록 훈련돼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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