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는 지난 19일 강동구 고덕주공 3단지아파트에서 민·관·군 합동 지진훈련을 전개했다. 남한산성 일대에서 규모 6.8 지진 발생으로 사회 인프라가 마비된 상황을 가정해 실시된 이날 훈련에는 박원순 서울시장, 권순경 서울소방재난본부장을 비롯해 수많은 시민들과 자치구 및 소방·의용소방대, 경찰, 국군 장병, 응급구조인력, 자원봉사대원 등 3700여명이 참여했다. 안전신문은 실제 상황을 방불케한 지진훈련 현장을 동행취재했다.

경주 지진 계기 “우리도 예외 아냐”
각본 없는 훈련에 자발적 참여 줄이어

철거 중인 재건축 아파트 단지를 활용해 만든 지진훈련장은 무너진 건물더미나 쓰러진 나무 등이 널려 있고 도로가 막혀 사람이나 차량 통행이 어려워 실제 대규모 지진피해현장 같다고 훈련에 참여한 시민들이 입을 모았다.

훈련이 시작되자 화재가 발생해 곳곳에서 불길이 치솟는가 하면 눈앞에서 ‘펑’하는 굉음과 함께 폭발이 일어났다. 현장에서는 매몰자 파악과 환자 후송 등을 위해 소방헬기와 군 헬기 여러대가 하늘에 떠 있었고 블레이드(헬기의 회전날개)가 일으키는 바람에 잿가루와 흙먼지가 날려 시야를 가렸다.

훈련에 참여한 한 어린이는 어머니의 옷자락을 붙잡고 놓지 않았다.

시민과 공무원들은 소화기를 들고 화재를 진압하는 한편 여럿이 달려들어 전복된 차량을 바로 세웠다. 또 삽을 들고 길가에 쌓인 콘크리트 더미나 나무 등 잔해를 치우고 도로를 정리해 차량이 다닐 수 있도록 했다.

학생들과 주민들은 건물 잔해 속 좁은 길에서 인솔자를 따라 줄지어 질서있게 안전한 공터로 대피했다. 훈련에 참여한 한 학생은 “질서없이 아무렇게나 대피했으면 여기저기 솟아 있는 철근과 날카로운 나뭇가지 때문에 다쳤을 것”이라고 말했다.

매몰된 인원을 구조하고 사망자를 수습하고 부상자를 응급차에 태워 병원으로 후송하는데는 군 장병, 경찰, 소방공무원 뿐만 아니라 의용소방대원들까지 나섰다. 부상자 이송에는 얼마만큼 시간이 소요되는지에 대한 평가도 이뤄졌다. 이송 제한 시간을 넘기면 부상자는 사망자로 처리된다고 시 관계자가 설명했다.

이재민 등록이나 구호물품을 전달하는데 사람들이 줄을 서도록 자원봉사자들이 참여했다. 수많은 시민들이 봉사자들의 지시에 따라 준비된 주먹밥과 물병을 받았다.

유례없는 대규모 지진훈련에서 자발적으로 참여한 시민들이 보여준 모습이었다.

훈련 상황을 확인하는데는 소방헬기와 군 헬기 외에도 서울소방재난본부에서 운영하는 드론이 동원됐다. 소방재난본부에서는 한번 충전하면 30분 정도 비행할 수 있는 드론을 7대 보유하고 있으며 이번 훈련에서는 3대가 현장 곳곳을 촬영하고 있다고 본부 관계자가 밝혔다. 드론 비행 방향과 고도 등을 조종하는 컨트롤러에는 화면이 부착돼 있어 상공에서 촬영되는 영상이 전송됐다.

또 재난대응본부 현장에 마련된 대형 스크린에는 훈련장 곳곳이 실시간으로 중계방송되고 있었다.

박원순 서울시장을 비롯해 훈련에 참여한 관련기관장들은 현장 곳곳을 돌아다니며 상황에 맞춰 즉각 대응방침을 전달했다. 또 권순경 서울소방재난본부장은 관할 소방서 구조대원들을 만나 격려의 말을 전하고 인명구조에 최선을 다할 것을 당부했다.

훈련 중 미흡한 부분도 발견됐다. 시민들을 따라 대피로를 걷다 보니 구석진 건물 모퉁이에서 담배를 피우는 사람들이 보였다. 훈련 중에 흡연해서는 안된다고 주변에서 지적하자 당사자들은 담배를 땅에 버리고 발로 비벼 껐다.

조금 떨어진 곳에서는 누군가 외국어로 도움을 구했지만 구조대원들은 당황해하며 제대로 안내하지 못했다. 훈련에 참여한 기관 중에는 영·중·일어 등 외국어 구사가 가능한 인력을 확보한 곳도 있었지만 이에 대한 기관간 정보 공유가 이뤄지지 못한듯 보였다. 한 지자체 관계자는 “외국인 이재민은 생각도 못했다”고 말하기도 했다.

이날 화재진압훈련이 이뤄졌지만 소화기를 사용하는 시민들은 화점(불난 곳)을 제대로 조준하지 못한 채 소화기 분말을 뿌렸다. 훈련 뒤 가까이 다가가 보니 붉게 타오르는 불씨가 미처 꺼지지 못하고 잿더미 곳곳에 알알히 남아 있었다. 화재 재발을 위해 소화 뒤 잔불을 확인하는 과정이 꼼꼼히 이뤄지지 않은 것이다.

이재민들을 위해 적십자사 자원봉사대원들이 새벽부터 1000여개의 주먹밥을 만들었다고 현장 관계자가 귀띔했다. 봉사자들이 천막에 쌓아둔 주먹밥과 물병을 나눠 주기 시작하자 줄을 서서 질서있게 물품을 받으라는 안내요원의 목소리는 이내 우르르 몰려든 인파 속에 묻히고 말았다.

아파트 단지 변두리에서 훈련을 지켜보던 한 시민은 “훈련에서도 이런데 정말 재난이 일어나면 제대로 구조와 복구가 이뤄질지 걱정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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