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명우 본지 주필

안전보건공단 임직원들이 최근 청렴 슬로건 선포식을 가진 것은 이미 알려져 있다.

안전보건공단이 왜 안전이 아닌 청렴 결의를 하는지 의아해 하는 사람들도 있다.

이는 청렴이 곧 안전을 가져온다고 생각하면 이해하기 쉽다. 안전은 최선을 다하지 않으면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 귀한 것이기 때문이다. 울산에 본부를 두고 있는 안전보건공단은 본부 및 연구원·교육원 외에도 전국 6개 지역본부와 21개 지사를 두고 임직원 1500명이 매일 같이 산업재해예방활동을 펼치고 있다.

안전보건공단이 하는 일은 매우 중요하다. 안전한 일터를 만들어 근로자들을 위험으로 부터 보호하고 행복한 대한민국을 만드는 임무를 수행하기 때문이다.

안전한 일터를 만든다는 것이 말은 쉽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못하다. 안전보건 사각지대에 놓여 있는 소규모 사업장과 서비스업종 근로자 등 산재취약계층은 아직도 사망과 부상의 재해에서 제대로 풀려나지 못하고 있다. 따라서 안전보건공단의 특별한 노력은 이들이 재해로부터 벗어나도록 안전한 일터를 만드는데 힘을 쏟고 있다.

30년전만 해도 국내 산업현장에선 100명 중 3명이 일을 하다 다쳤다. 산업재해를 당한 근로자들이 부지기수에 달하니 우리 산업현장의 악명이 높아질 수밖에 없었다. 그렇던 우리 산업현장이 달라지고 있다.

1987년 2.66%에 이르던 산업재해율은 지난해 기준 0.50%로 크게 감소했다. 1964년 산업재해 통계를 만든 이후 가장 좋은 기록이다. 1987년 통계 14만2596명이던 산업재해자도 지난 2015년 기준 9만129명으로 줄었다. 이런 결과를 낸 중심에 안전보건공단이 있다고 할 것이다.

안전보건공단은 1987년에 설립됐다. 그로부터 이제 30년에 육박한다. 그동안 해온 일도 많지만 앞으로가 더 중요하다.

오는 2019년까지 산업재해 사망자를 근로자 1만명당 0.3명으로 낮춘다는 계획을 추진하고 있다. 따라서 근로자들이 이에 따른 혜택을 받으려면 안전보건공단이 하는 일을 알아야 한다.

그간 안전보건공단은 민간위탁을 통한 소규모 사업장 지원을 확대해 관련 예산을 2011년 240억원에서 지난해 329억원으로 크게 늘렸다. 방호장치나 보호구를 제조하는 소규모 사업장에 대해서도 기술개발 등을 위해 지난해 2억4000만원을 지원했다.

안전보건공단은 이처럼 지원을 하는 기관일 뿐아니라 특히 안전을 일궈내는 기관이므로 스스로 청렴을 다지는 것이기도 하다.

우리는 지금 이같은 안전보건공단을 주목한다. 과거 화재로 인한 피해가 막심했을 때 우리는 곳곳에 ‘불조심’을 써붙였다. 인위적인 각성훈련이다.

불편하고 번거롭더라도 우리는 서로에게 위험과 안전을 대비시켜 인식하고 있도록 일러주는 수고를 마다해서는 안된다.

이처럼 서로에게 ‘항시 위험에 대처하고 있는가’, ‘혹시 안전불감증이 아닌가’ 하는 것을 일러주는 것으로 예방문화가 자리잡게 된다.

예방문화의 시대가 열리는 지금 안전문화를 정착시켜 산재를 획기적으로 줄이려는 안전보건공단의 노력 또한 좋은 성과를 낼 것으로 기대된다.

그러나 안전보건공단에게는 이 때문에 또 새로운 의무가 부여될 것으로 보인다. 안전이라 하면 이 공단 보다 더 안전에 가까운 기관이 몇이나 되겠는가.

안전보건공단은 원래 산업안전보건공단으로 시작됐다. 산업재해를 줄이자는 목적으로 출발했으나 이제는 국민안전으로까지 시야가 넓어지면서 그냥 안전보건공단으로 불린다.

안그래도 국회에서 국민안전교육진흥법이 통과되고 본격적인 평생안전교육이 펼쳐지는 전환점을 맞는 시기여서 안전보건공단이 가만히 있을 처지가 아닌 것이다. 안전보건공단만큼 안전에 관한 자료와 교육 노하우를 확보하고 있는 곳도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산업안전보건공단에서 안전보건공단으로 몸무게를 줄이면서 날렵하게 뛰어보자 했던 것이 이제 때를 맞는 형국이다. 안전보건공단이 진화할 시점이 된 것이다.

안전보건공단은 안전과 예방에 관한 교육자료에서부터 재난에 대처하는 실전방안 등을 정리해 국민안전교육 교재를 만드는데 도움을 줘야할 것이다. 물론 국민안전교육 교재는 다양한 내용을 포함하게 될 것이지만 그중 중요한 부분을 내놓을 수 있다면 얼마나 신이 나겠는가.

‘각주구검(刻舟求劍)’이란 고사성어가 있다. ‘어리석은 사람이 낡은 관념에 사로잡혀 융통성이 없고 세상일에 어둡다’는 뜻으로 쓰이는 고사성어다.

중국 춘추전국시대(春秋戰國時代) 초(楚)나라 사람이 배를 타고 강을 건너다 들고 있던 소중한 검을 물속에 빠뜨렸다. 그러자 그는 곧 작은 칼로 검을 빠뜨린 뱃전에다 칼자국을 내어 표시를 해 뒀다. 이윽고 배가 언덕에 와닿자 ‘칼이 떨어진 자리에 표시를 해놓았으니 쉽게 찾을 수 있겠지’ 하며  칼자국이 있는 뱃전 밑 물속으로 뛰어들었다. 그러나 그 곳에 칼이 있을리 없다. 이것을 보고 사람들이 그의 어리석은 행동을 비웃었다.

이와 같이 옛것을 지키다 시세의 추이도 모르고 눈앞에 보이는 하나만을 고집하는 처사, 즉 어리석고 융통성이 없음을 비유해서 한 말이다. 여씨춘추(呂氏春秋)에 그 유래가 실려 있다.

누구든 진화하는 시대에 부응하지 못하는 어리석음을 범해서는 안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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