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천지원수(徹天之怨讐)는 하늘에 사무치도록 한이 맺히게 한 원수를 일컫는다. 불구대천지수(不俱戴天之讐)라고도 한다. 중국의 예기(禮記) 곡례편(曲禮篇)에 나오는 말이며 맹자(孟子) 진심편(盡心篇)에도 유사한 내용의 말이 나온다.
‘하늘을 같이 이지 못할 원수’라는 뜻의 이 말은 이 세상에서 같이 살 수 없을 만큼의 큰 원한을 비유해 이르는 말이다.
원래는 ‘아버지의 원수’를 가리키는 말인데 오늘날 이 말은 아버지의 원수에 한하지 않고 ‘더불어 살 수 없을 정도로 미운 놈’이란 뜻으로 쓰이기도 한다. 즉 아버지의 원수와는 같은 하늘을 이고 함께 살 수 없으므로 반드시 죽여야 하고, 형제의 원수를 만났을 때 집으로 무기를 가지러 갔다가 원수를 놓쳐서는 안되므로 항상 무기를 지니고 다니다가 그 자리에서 바로 죽여야 하며, 친구의 원수와는 같은 나라에서 함께 살 수 없으므로 나라 밖으로 쫓아내든가 아니면 역시 죽여야 한다는 뜻이다.
여기서 우리가 이해해야 할 부분은 중국과 우리의 인식차가 크다는 것이다.
중국에서는 예로부터 아버지나 스승 또는 친구의 원수를 갚기 위해 복수하는 행위를 의로운 행동으로 여겨왔다. 이는 가부장제 중심의 인간관계를 중시한 고대 중국의 사회적 배경과 관계가 깊다 할 것이다.
원수와 원수간의 사이라면 누가 뭐래도 오월동주(吳越同舟)의 두주인공인 오나라 왕 부차(夫差)와 월나라 왕 구천(勾踐)을 이를 것이다. 이들은 바로 와신상담(臥薪嘗膽)의 장본인이기도 하다.
BC 496년 오나라의 왕 합려(闔閭)는 월나라로 쳐들어 갔다가 패장이 된다. 화살에 맞아 중상을 입고 병상에 누운 합려는 죽기 전 그의 아들을 불러 원수를 갚으라 유언한다.
이에 부차는 가시가 많은 장작 위에 자리를 펴고 자며 방앞에 사람을 세워 두고 출입할 때마다 “부차야, 아비의 원수를 잊었느냐!”라고 외치게 했다. 부차는 매일밤 눈물을 흘리며 아버지의 원한을 되새겼다.
부차의 이와 같은 소식을 들은 월나라 왕 구천은 기선을 제압하기 위해 오나라를 먼저 쳐들어 갔으나 대패해 항복하고 만다. 포로가 된 구천과 신하 범려는 3년 동안 부차의 노복으로 갖은 고역과 모욕을 치렀다. 그러던 구천은 영원히 오나라를 섬길 것을 맹세하고 겨우 목숨만 건져 귀국했다.
그는 돌아오자 잠자리 옆에 항상 쓸개를 매달아 놓고, 앉으나 서나 늘 이 쓸개를 핥아 쓴맛을 되씹으며 “너는 회계의 치욕(會稽之恥)을 잊었느냐!”며 자신을 채찍질했다.
그후 오나라 부차가 중원을 차지하기 위해 북벌에만 신경을 쏟는 사이 구천이 오나라를 정복하고 부차를 생포해 스스로 목숨을 끊게 한 것은 그로부터 20년 후의 일이다. 여기서 부차의 와신과 구천의 상담이 합쳐서 된 말이 와신상담이다.
그렇다면 이 와신상담이 후세에 이르는 교훈은 무엇인가. 바로 안전불감증 퇴치의 근본을 가르치고 있다. 안전불감증을 퇴치하려면 항시 긴장하고 있어야 한다. 그 극한의 처방으로 장작 위에서 잠을 자고 그 쓰디쓴 쓸개를 빨지 않았던가.
우리가 늘 외치는 것이 안전불감증을 퇴치하자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결코 말로만 되지 않는다는 것을 와신상담의 교훈에서 실감할 수 있다.
우리 주변엔 곳곳에 안전사각지대가 도사리고 있다. 여기저기서 사고가 터진다. 그 원인의 대부분이 바로 안전불감증이다. 그러나 우리는 이 안전불감증을 아주 대수롭게 치부한다.
안전에 대해서는 위험을 경험해본 자만이 그 가치를 실감할 수 있다. 생명보다 더 중요한 것이 또 있겠는가.
정부기관들은 재해율을 크게 낮추겠다고 나팔을 불고 있지만 여태껏 추세로 보면 공염불이 될 공산이 크다. 지도·감독 등 행정력을 집중하고 경각심을 제고시켜 재해예방 파급효과를 극대화한다는 계획이지만 어찌해서 재해는 계속 발생하는 것일까.
누가 뭐래도 한국이 안전후진국일 수밖에 없는 이유는 우리의 안전문화가 자리를 잡지 못하고 있는 탓이다.
안전은 우리 모두의 공동의무란 안전의식을 우리 몸에 심는 것이 급선무다. 힘들고 번거롭더라도 우리는 지속적인 범국민적 안전의식 심기에 노력을 집중해야 한다. 안전문화가 정착돼야 사고와 재해도 줄 터인데 우리는 아직도 안전을 우리 것으로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
비정상의 정상화가 이뤄져야 할 부분이 바로 이곳이라 해도 좋다. 허구 투성이의 말 풍년 그 뒤안길의 안전불감지대를 양지로 이끌어 내야 한다.
와신상담이 어찌 쉬운 일이랴. 안전불감증을 깨려는 의지도 이같은 결기가 있어야 한다. 안전은 결코 쉽게 제발로 굴러 들어오지 않기 때문이다.

저작권자 © 안전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